부친 죽인 북한군 용서한 서광선 이대 명예교수 “용서하는 힘 키우는 게 교회가 해야 할 일”

입력 2015-11-19 20:28 수정 2015-11-19 21:44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18일 서울 서대문구 원룸 사무실에서 “용서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평안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서광선(84)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최근 ‘왜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책의 추천사에 이렇게 적었다.

“고난도 십자가이지만,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더 무섭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이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지는 사람에게 부활의 승리와 영광이 있다고 믿는다.”

평생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온 그이기에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었다.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진 그는 왜, 어떻게 용서했을까. 비 내리는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2길 서 교수의 작은 원룸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까 중요하고,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해야 진짜 용서하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아버지 서용문 목사는 1950년 북한군에게 총살당했다. 19세였던 그는 줄곧 ‘아버지의 원수를 어떻게 갚을까’ 고민하며 살았다.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원 유학 시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보면서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결국 원수를 사랑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다양한 통로로 평화·통일운동에 참여했다. 스위스 미국 캐나다 등에서 북한교회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는 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그는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해서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하나가 되는 것만이 한민족이 살 길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후 7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한국교회 내에는 북한에 대한 저주와 증오를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북한을 포용하고 용서하자고 하면 종북으로 몰곤 한다. 서 교수는 이런 현실에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는 “우리나라는 미움 공화국, 증오와 분노 공화국 같다”며 “북한을 미워해야 대한민국 국민이라고까지 하는 걸 보면 사람들 마음이 온통 미움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고 했다.

서 교수도 ‘순교자 아버지를 둔 사람이 왜 빨갱이 편을 드느냐’며 비난을 많이 받았다. 그는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용서를 통한 자유로움을 느꼈기에 그들을 미워하거나 화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화를 내지 않으니 그들이 나를 더 미워하더라”며 “북한 사람보다 여기 사람들과의 괴리가 더 깊으니 얼마나 슬픈 일이냐”고 씁쓸해 했다.

서 교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은 용서한 것 아니냐”며 “용서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키우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 여전히 미움과 증오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그들도 상처가 있기 때문에 미워할 게 아니라 함께 손잡고 울 수밖에 없다”며 “그것이 치유의 과정이자 예수님의 부활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리 테러와 관련해 “파리 시민뿐 아니라 서구 제국에 희생당한 중동의 양민들과 군인들에 대해서도 같이 애도하는 것이 기독인들의 태도가 아니겠느냐”며 “원수를 원수로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문명이 멸망하는 길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