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이후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유럽 곳곳에서 크고 작은 증오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공포증)가 고조되면서 ‘무슬림 대 반무슬림’ 구도가 장기화될 경우 테러를 벌인 이슬람국가(IS)만 외려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시의 한 유대인 학교에서 키파(유대인 전통 모자)를 쓴 역사·지리학 교사(57)가 3명의 남성으로부터 흉기 공격을 당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교사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경찰이 용의자들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현지 검찰은 “세 용의자가 거리를 걷던 피해 교사에게 접근해 팔과 다리를 찌른 뒤 도주했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용의자들이 유대주의를 비난하는 욕설과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에 대한 지지 발언을 쏟아냈으며, 특히 스마트폰으로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인 무함마드 메라의 사진을 보게 했다고 전했다. 메라는 지난 2012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유대인 어린이 3명, 교사 1명, 군인 3명을 살해한 테러범이다.
마르세유의 한 지하철역에서도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젊은 여성이 2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경상을 입었다. 이 남성은 스카프를 두른 여성을 테러리스트로 오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 외곽 라이로바치에서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군인 2명이 목숨을 잃고 4명이 부상했다. 용의자는 마권판매소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거리로 나와 버스 창문에도 총격을 가했다. 달아난 용의자를 추적 중인 경찰은 아직 범행 동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의 긴장국면이 계속되는 가운데 16일 총리 테러 협박을 받은 스웨덴과 17일 코펜하겐 국제공항 폭탄 테러 위협으로 진땀을 뺀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테러 경보를 역대 가장 높은 2단계로 격상했다. 국경 철조망 설치 등 안 그래도 반(反)난민 정서가 고조되고 있던 슬로베니아는 한층 강화된 반테러법 개정에 착수했다.
무슬림 혐오와 난민에 대한 반감의 확산이 IS가 테러를 통해 획책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란 점에서 일련의 증오범죄와 사회 불안은 심상치 않은 징조로 해석된다. 영국 가디언은 “생드니의 비극을 통해 테러범들은 사회 불만에 경도된 유럽의 젊은이들을 ‘조력자’로 포섭하려는 음모를 획책했음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무슬림=테러세력’이라는 성급한 일반화를 가장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IS라는 지적이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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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19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