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한국, 제3의 적 ‘日 꼼수’

입력 2015-11-19 21:52
고군분투(孤軍奮鬪).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에 참가 중인 한국 야구대표팀의 지금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실제로 대표팀은 바다 건너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맞붙는 상대가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보이지 않는 ‘제3의 적’과도 싸워야 했다.

이번 대회 내내 대표팀을 괴롭힌 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주최 측’이다. 프리미어12는 야구 종목을 올림픽에 복귀시키려는 WBSC와 일본의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만들어진 대회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는 일본은 지난해 1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올림픽에 추가할 복수의 종목을 제안할 권한을 얻었다. 일본이 유난스럽게 대회를 준비한 것도 국제대회 성공 여부에 따라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은 일본이 짜놓은 시나리오에 들러리 취급을 받았다.

한국은 19일 현재 비행기 이동만 세 번을 했다. 한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대만, 다시 대만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예선전과 8강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을 만한 ‘알짜배기’ 경기를 모두 자국에서 치르려는 일본의 계산 때문이었다. 4강전을 치르러 일본으로 이동할 땐 18일 새벽 4시30분에 숙소를 출발해 오전 7시20분 비행기를 탔다. 일본전 선발로 등판한 이대은도 “비행기를 타는 게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단의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이대호 또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이동하기는 처음”이라며 “몸이 너무 피곤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일본 선수들이 18일 오후 항공편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이동한 것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났다.

경기 일정 변경도 편파적이었다. 일본의 4강 진출 여부에 따라 준결승 일정이 바뀌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한국과 일본의 4강전은 결승전을 하루 앞둔 20일 열렸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6일 사전에 공지된 일정과 달리 일본이 4강에 오를 경우 시간이 바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특정국가 진출 여부에 따라 대회 스케줄이 조정되는 것은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동안 말을 아꼈던 김인식 대표팀 감독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는 체계적이다”라는 말로 이번 대회 주최 측의 운영 행태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일본 경기는 모두 저녁 경기로 치러지는 반면 다른 나라들은 낮 경기와 저녁 경기가 불규칙하게 편성됐다. 공도 WBC나 올림픽과 달리 일본프로야구 공인구를 사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주최 측은 이 모든 것을 “대회의 흥행을 위해서”라는 말로 합리화하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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