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IS와의 전쟁] 美軍 이라크 ‘부카 수용소’, IS 지도부 길러낸 꼴

입력 2015-11-19 22:23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용의자들인 압데슬람 두 형제의 출신지인 벨기에 브뤼셀 몰렌베이크에서 18일(현지시간) 이들의 또 다른 형제인 무함마드(왼쪽)가 현지 주민들이 파리 테러 희생자 추모 집회를 여는 사이 자신의 집 발코니에서 한 남성과 함께 추모 촛불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2003년 12월 미군은 쿠웨이트 국경과 가까운 이라크 남부에 있는 ‘캠프 프레디’를 영국군으로부터 인수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 제거를 명목으로 미군과 영국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9개월 만이었다. 미군은 40㎢에 이르는 광대한 이곳을 후세인 정권에 충성하는 관료와 군·경찰, 이라크군 포로, 이슬람 과격파들을 구금하는 수용소로 만들었다. 이름도 9·11테러 당시 사망한 뉴욕소방서장의 이름을 따 ‘캠프 부카(Bucca)’로 바꿨다.

2009년 7월 철수를 앞두고 미군이 폐쇄하기까지 약 10만명이 이 수용소를 거쳐 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포로 학대 스캔들이 터지자 재소자들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이곳을 ‘모범’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이라크·시리아를 휩쓸면서 당시 미군이 알아채지 못했던 사실이 분명해졌다. 부카 수용소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길러내는 대학이자 온상이었다는 것이다.

18일(현지시간) 미국의 테러리즘 분석 기업인 소우판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최고위 지도부 중 9명이 부카 수용소를 거쳤다. 최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10개월간 이곳에 수용됐고, 지난해 사망한 2인자 아부 무슬림 알 투르크마니도 이곳 출신이다.

미군은 온건파와 강경파를 구분해 1000명씩 따로 구금했다고 한다. 수용소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극단주의자들이 IS 설립 토대가 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용소가 크게 세속주의자들인 후세인 정권을 추종하는 바트당원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나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근본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장악했다면서 “(부카 수용소에) 들어갈 때는 민족주의자였다가 나올 때는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됐다”는 IS 고위 간부의 말을 인용했다.

2006∼2007년 부카 수용소 소장이었던 제임스 스카일러 제론드는 “당시 우리들은 부카 수용소가 용의자들을 단순히 수감하는 게 아니라 극단주의를 증식시키는 압력밥솥이 된 것이 아닌지 우려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소자들 사이에 더욱 과격해져야 한다는 집단적 압력이 강했다”면서 “조직에 한 명이라도 과격분자가 있으면 전 재소자가 더욱 과격해지곤 했다”고 회고했다.

소우판그룹은 겉으로 어울리지 않는 후세인 잔당들과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부카 수용소가 ‘공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면서 후세인 추종자들은 명분과 목적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행정 경험과 군사적 전문성을 상대방으로부터 보충했다고 분석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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