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등굣길에 우리는 새마을기를 앞세워 행진하며 파월부대 군가와 함께 혼식(混食)장려 노래를 즐겨 불렀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앉아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점심시간이면 도시락 밥에 보리쌀 등 잡곡이 25% 이상 섞였는지 검사를 받아야 했다. 정부가 1960년대까지 분식장려운동을 전개하다 70년을 전후해 혼식장려운동으로 전환한 때였다. 단순 캠페인이 아니라 농림부가 행정명령을 발동해 음식점에서도 밥 지을 때 잡곡을 25% 이상 섞도록 강제했다.
쌀의 생산량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쳐서다. 수입해야 할 상황이지만 외화가 부족해 그럴 수도 없었다. 절미(節米)운동이 불가피했다. 그런 때 혜성같이 등장한 통일벼는 기존 품종에 비해 생산성이 30% 이상 높아 ‘기적의 쌀’로 불렸다. 서울대 허문회 교수팀에 의해 71년 개발된 통일벼는 이듬해부터 전국 농가에 급속히 보급돼 76년에는 전체 재배 면적의 44%를 차지했다. 그해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 쌀 자급자족을 이뤄냈다. 통일벼는 맛이 덜하다는 이유로 재배 면적이 점차 감소했지만 80년대 이후 쌀 수급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쌀이 천덕꾸러기 신세다. ‘잉여 쌀’ 문제가 심각하다. 올해 쌀 생산량은 6년 만에 최고치를 찍어 432만7000t으로 조사됐다. 반대로 소비는 감소세가 가팔라 내년 이맘때면 재고량이 무려 171만t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쌀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풍년임에도 농민들은 울상이고, 정부는 재고 쌀 처리와 변동 직불금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급기야 농림축산식품부가 쌀 수급 안정 대책과 관련한 대국민 정책제안 공모에 들어갔다. 진작 예상된 일인데도 지금 와서 호들갑을 떠는 게 우습다. 대북 지원이나 사료 전환도 여의치 않으니 답답하긴 하겠다. 건강시대에 반하는 쌀밥먹기운동은 더더욱 안 될 말일 테고.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쌀을 어찌할꼬
입력 2015-11-19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