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그라피티 작가 ‘알타임 죠’] “낙서 같죠? 사람들 호기심을 믿음으로”

입력 2015-11-20 17:44
그라피티 작가 알타임 죠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에서 작품 설명을 하며 웃고 있다. 아래는 그가 성경구절을 그라피티로 표현한 작품들. 강민석 선임기자
화폭 위에 영어 알파벳이 어지러이 담겼다. 스프레이로 익살맞게 쓰인 글자는 크기와 모양, 자간도 제각각으로 아무렇게나 낙서한 것 같다. 하지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글자가 모여 성경구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둠이란 뜻의 ‘Darkness’를 불길처럼 그리는 등 단어 의미에 어울리게 글자를 표현한 작품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1 PETER 2:9(베드로전서 2장 9절)’ ‘LUKE 9:23(누가복음 9장 23절)’이란 제목의 작품들은 그라피티 작가 알타임 죠(Artime Joe·본명 유인준)가 제작한 것이다. 벽이 아닌 캔버스에 스프레이로 제작한 작품들은 2013년 열린 그의 첫 개인전 ‘섬 피플(SOME PEOPLE)’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후에도 그는 성경 구절을 ‘레터링’(문자를 그리는 것)으로 해석한 작품을 종종 발표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그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두 번째 개인전 ‘히어로즈(HEROES)’로 분주한 그를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의 갤러리에서 만났다. 지난달 24일부터 열린 개인전의 마지막 날이다. 지하 전시장의 벽면에는 미국 뉴욕 할렘가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그라피티가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작품은 벽면 위 캔버스 형태로 걸려 있는데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국 프로농구 선수 등 작가의 유년시절 영웅들이 주인공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힙합 음악을 듣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스프레이를 들고 그라피티를 하는 등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해석됐다. ‘그라피티 작품은 반항적인 이미지일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파스텔 톤의 작품들은 친숙하고 아기자기하다.

10년 넘게 그라피티 작가로 활동 중인 알타임 죠는 원래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그라피티로 전향한 건 군 시절 벽화를 그린 경험 때문이다. “군 복무 중 미대생이란 이유로 부대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이때 벽화의 힘을 알게 됐습니다. 벽화는 종이에 그린 작품보다 전달하는 메시지의 힘이나 느낌이 크거든요. 벽이 밖에 있으니 사람들이 쉽게 자주 작품을 접할 수 있고요.”

전역한 그는 2002년 2인조 그라피티 그룹 ‘JNJ CREW’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브랜드 행사나 축제 등에 참가해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2008년 홀연히 독일로 떠난다. 독일인 친구와 45일간 유럽 전역을 돌며 도심에 그라피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독일에선 베를린 장벽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고 스페인 등 여타 유럽 도시 10여곳에서는 현지 그라피티 작가들과 벽화를 그렸다. 이때 만난 인연으로 그는 아시아인 최초로 유명 그라피티 그룹 ‘스틱 업 키즈(Stick Up Kids)’ 멤버로 합류한다. 이후 중국, 일본 등지에서 열린 해외 그라피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고 나이키, 폭스바겐, MCM 등 기업과의 협업도 잦아지면서 점차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라피티에 빠져 살던 그가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원래 모태신앙인데 10년 가까이 교회를 안 갔어요. 어릴 때 ‘교회 다니라’는 부모님 권유가 강요로 들려 스스로 가고 싶을 때까지는 안 나가겠다고 다짐했거든요. 2012년에야 교회를 제 발로 다시 찾았습니다. 갑자기 정말 교회가 그립더라고요. 마침 아는 동생이 ‘홍대스러운 교회’를 다닌다고 해 따라갔는데 정말 예술계에 종사하는 교인이 많았습니다. 처음으로 교회에 동질감을 느낀 순간이었죠.”

알타임 죠가 찾은 교회는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의 블루라이트교회다. 성경구절을 작품으로 제작한 것도 이곳에서 다시 신앙을 키우면서부터다. 그는 예배뿐 아니라 매주 목요일 성경공부 소모임에도 성실히 참여하고 있다. 서울, 뉴욕, 런던 등 대도심에 큰 벽화를 작업하는 게 꿈이라는 그는 앞으로도 얼핏 보면 일반 그림 같지만 자세히 보면 복음을 담은 작품을 낼 예정이다.

“직접적으로 복음을 설명하는 작품보다는 멋진 글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성경말씀이 담긴 작품을 하고 싶어요. 성경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하잖아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깨달음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

양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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