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재중] 서울역 고가와 청계천

입력 2015-11-19 19:30

서울역 고가 공원화사업과 서울 청계천 복원사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개발 시대를 상징하는 고가를 철거했거나 폐쇄하려는 것이 그렇고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갈등을 빚는 것도 비슷하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한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2003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사업을 추진하던 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청계천 복원을 위해 고가를 철거하고 왕복 12차로를 2개 차로로 줄이겠다고 했을 때 반대가 거셌다. 노무현정부의 내각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국무회의에 참석해 청계천 복원을 위한 중앙정부의 협조를 요청했을 때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분위기를 언급하며 서울시 간부들에게 “청계천 복원은 어렵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대통령 비서실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노 전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사업에 협조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청계천 복원공사 착공식에도 참석했다. 그렇게 찬반 논란이 많았고 진통도 컸지만 지금 청계천은 도심의 휴식공간과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역 고가 7017 프로젝트’는 1970년에 지어진 서울역 고가에 공원을 조성하고, 주변의 17개 보행길과 연결해 사람들이 머물게 하려는 사업이다. 사업 초기에는 남대문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들이 반발해 서울시가 설득하고 나니 이젠 경찰과 문화재청 등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서울경찰청은 시가 서울역 고가 차량 통행금지를 앞두고 교통흐름 개선을 위해 심의를 요청한 ‘서울역 주변 교차로 개선계획’에 대해 지난 7월과 8월 두 번 보류 결정을 내렸다. 지난 3일 교통안전시설심의위원회에는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시가 마련한 교통체계 개선안 가운데 중림동과 염천교 교차로는 경찰 심의에서 통과됐고 서울역 교차로와 숭례문 서측교차로 신설, 숙대입구 교차로도 의견접근이 이뤄진 상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안전이다. 서울역 고가는 정밀안전진단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아 올해 말까지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감사원마저 기능을 상실한 교각, 바닥판 등에 대해 근본적인 보수·보강 조치를 하고 철거계획을 앞당겨 추진하라고 지적했다. 보수공사를 하더라도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한다.

서울시는 시민 안전을 고려해 11월 29일 0시부터 서울역 고가 차량통행을 금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통개선 대책이 시행되지 않은 채 고가의 차량만 통제된다면 교통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

시민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차량통행이 금지되는지, 우회도로는 운영되는지 등이 궁금할 것이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중림동, 서계동, 만리동 등 낙후된 서울역 배후지역 개발을 포함하고 있어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

경찰은 지금이라도 신속히 심의를 진행해 서울역 고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계속 심의를 거부하거나 지체한다면 ‘정치적 함의’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나 여당도 정부를 통해 박원순 시장을 견제하려는 속셈이라면 대승적인 차원에서 청계천 복원사업에 협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단을 새겨보기 바란다. 불법이 아니라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길을 열어주는 것이 순리다. 서울역 고가 사업의 공과는 온전히 박 시장의 몫이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