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는 끝까지 ‘평화시위’ 기조를 지킨 적이 있는가. 대규모 집회 때마다 적진으로 진격하듯 청와대 진출을 시도한다. 경찰이 차벽으로 막아서면 밧줄로 끌어내고 쇠파이프나 각목 따위로 부순다. 술병과 돌덩이를 집어던지기도 한다. 물대포와 최루액을 난사하면 시위대는 더 과격해진다. 양측에 많은 부상자가 나온다. 경찰이 폭력시위라고 비판하면 시위대는 과잉진압 때문이었다고 받아친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장면이다. 다음 달 5일로 예고된 2차 ‘민중총궐기 대회’도 이변이 없는 한 이렇게 전개될 것이다. 시위대는 경찰이 폭력을 유도했다고 주장하지만 평화시위는 어떤 경우에도 비폭력으로 맞서는 것이다. 경찰의 강경 대응이 빤한 상황에서 ‘진격’이라는 도발적 표현까지 써가며 청와대 진출을 강행해야 할 이유도 없다. 집회 참가자 사이에서조차 쳇바퀴 돌듯 폭력이 반복되는 지금의 시위 방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폭력을 낳는 폭력
한 진보 시민단체 관계자는 “증오가 증오를 낳는다. 청와대를 가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차벽을 끌어낼 것이 아니라 각자의 요구사항이 담긴 종이를 차벽 너머로 날리는 등 메시지를 남기는 평화적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폭력시위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의제를 집어삼키고 상처·증오·갈등만 뱉어낸다.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각 단체가 내세운 의제는 국정 교과서 반대, 노동개혁 반대, 쌀값 폭락 대책 마련 등 11개였다. 사람들은 폭력만 기억할 뿐이다. 당시 집회에 참가했던 한 시민은 “집회의 폭력성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작 다뤄야 할 여러 의제가 논의되지 않는 상황이 굉장히 안타깝다”고 했다.
얻어내는 것도 없는 시위 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요구사항을 관철하겠다면 지지층을 넓히는 게 더 효과적이다. 시민이 등을 돌리면 힘을 받을 수 없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에 압박을 주는 게 목표라면 지금처럼 해서는 압박은커녕 오히려 불리해진다. 적대적으로 가면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위의 목표는 시민들을 우리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정부와 의제 경쟁을 하는 식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당 대표인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도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만간 토론회를 열어 새로운 집회 방식을 논의할 계획이다.
차벽, 최선인가
그간의 집회에서 시위대는 차벽에 가로막히는 순간 폭력적으로 변했다. 높고 단단한 차벽이 시위대를 자극한 것이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은 불법시위를 예상하고 차벽을 설치하지만 이 방식이 역으로 불법시위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위자와 경찰은 항상 상대적이다. 경찰이 강하게 제지하면 시위대도 과격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감히 차벽을 걷어내지 못한다. 시위대가 차벽 앞에서 내보인 폭력성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임 교수는 “그동안 큰 집회 때마다 항상 충돌이 벌어지면서 양측 간 신뢰가 깨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시위문화의 과격성이나 시위집단이 대규모로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차벽을 설치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대규모로 시위가 이뤄지면 주체 측에서도 통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대규모 집회시위가 진행된다면 차벽 외에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며 “이번 기회에 시위문화나 시위관리 방식이 전반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 조사 돌입
국가인권위원회는 14일 집회 때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전방위적 기초조사에 돌입했다고 18일 밝혔다.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68)씨 사례를 중심으로 과잉진압 논란이 일자 증거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인권위는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액을 과도하게 사용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증거가 모이면 인권위는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직권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계사로 피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쯤 머물고 있는 관음전에서 조계사 부주지와 총무실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신변보호와 함께 시국 문제에 대한 조계종 화쟁위원회의 중재를 요청했다. 조계사 관계자는 “다음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다음 달 초까지 은신처를 제공한다는 식의 조건은 없었다”고 말했다.강창욱 박세환 홍석호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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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위 지켰나 시위대·경찰에 묻는다 인권 보호했나
입력 2015-11-1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