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능력주의는 허구다] 당신의 서열, 태어날 때 결정됐다

입력 2015-11-19 19:33
이 시대에 성공은 능력 순인가? 그러니까 능력이 있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키우면 성공할 수 있는가? 또는 이렇게 질문해볼 수도 있겠다. 누군가 성공했다면 그 이유가 과연 능력 때문인가? 그러니까 그가 남들보다 더 능력이 많고 더 노력했다는 증거가 되는가?

그렇다 아니다 간단히 답변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성공에 대해서 말할 때 재능, 능력, 성실함 같은 개인의 능력을 빼놓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능력만으로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상속, 인맥, 교육 같은 것은 분명히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

성공에는 능력적 요인과 비능력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고 보는 게 맞다. 여기서 무엇이 보다 주요한 성공 요인인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그간 우리는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가장 많이 보상하는 시스템으로 이 사회가 구축돼 있다고 믿어 왔다. 개인의 능력이 성공의 토대이자 기준이라는 ‘능력주의’는 현대성의 핵심이자 현대사회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다.

비능력적 요인에 주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저성장이 이어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커지면서 토마 피케티 같은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세습자본주의’라는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또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방 한 칸 차지할 수 없는 젊은이들 사이에는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이 유행하고 있다. 개인의 능력이 아닌 것들이 삶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기 시작한 젊은이들은 급기야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느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능력주의라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그동안 역사적으로 개인의 능력적 요인이 각자의 경제적 삶에 미치는 영향은 ‘과대평가’해온 반면, 비능력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해 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인 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는 개인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다각도로 검토한 뒤 “지금의 세상은 비능력적인 요인들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들은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들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비능력적 요인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상속이다. “사람들이 사회의 경제적인 서열에서 결국 어느 위치에 서게 되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맨 처음 출발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상속하는 것은 재산만이 아니다. “부모 세대가 쌓아 놓은 사회적 인맥, 상류층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문화적 자원, 직업 기회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우수한 교육 등은 재산 상속 못지않게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특권을 물려주는 상속의 한 유형이다.”

능력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출발점의 차이는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계층이동의 확실한 통로이자 기회의 평등을 대표하는 교육마저 부모의 경제력이라는 비능력적 요인에 의해 장악된 현실을 보여준다. 단적인 예로,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대학 입학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부모의 경제력 차이에 따라 구분되는 거주지의 차이 역시 학교와 교사의 수준 차이, 그리고 대학 진학의 차이로 이어진다. 학교는 “계층 간 불평등을 반영하고, 정당화하고, 더불어 다음 세대에까지 그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매개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유층이나 특권층이 자녀들에게 재산 외에 물려주는 ‘무형의 상속’, 즉 ‘뉴 머니(사회적· 문화적 자본)’의 실체와 영향력에 대한 분석도 흥미진진하다. ‘뉴 머니’는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과의 인맥을 포함해 세련된 매너, 호감을 주는 태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 등과 관련된 것인데 이것들은 수많은 특권과 기회를 잡는 힘이 된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이고,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윽박지르는 사회에서 성공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는 이 책은 패자들이 양산되는 이 시대에 실패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금의 실패와 좌절이 당신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순 없다는 것, 개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우리의 삶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능력주의는 성공과 패배를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면서 더욱 노력하라는 자기계발의 주문으로 이어진다. 능력주의의 허구를 폭로하는 이 책은 성공과 패배를 결정하는 구조를 바라보게 하면서 정책과 정치의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