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공정위식 ‘경제민주화’ 잣대

입력 2015-11-18 19:53

공정거래위원회가 18일 대규모유통업법 과징금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대형마트,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특별법 성격으로 공정거래법보다 처벌 수위가 높다.

한 예로 대형마트가 납품업체와 거래한 대금 10억원 중 ‘단가 후려치기’ 등의 방식으로 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액이 5억원뿐일 경우에도 과징금은 전체 거래대금 10억원을 기준으로 매겨진다. 공정위는 과징금 고시를 고쳐 앞으로는 5억원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매긴다는 방침이다.

법 위반과 관련이 없는 부분에 과징금을 물리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다. 쉽게 말하면 ‘갑의 횡포’를 부리다 적발된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 대한 과징금을 합리적으로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설명은 한편으론 논리 정연해 보인다. 그러나 논리적 잣대만으로 불합리한 현 유통시장을 예단하는 것은 학문연구의 장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다. 2012년 1월 대규모유통업법 시행 당시 대형 유통업체들은 “단 한 차례 적발로 회사가 망할 수 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이후 대형마트, 백화점, TV홈쇼핑 할 것 없이 법 위반은 연례행사였다. 이들 업체는 최대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재발방지 약속은 그때뿐이었다. 공정위는 연내에 또 대형마트 3사에 대한 제재를 내릴 예정이다.

공정위는 앞서 지난달에는 입찰 담합 들러리를 선 건설사들에 과징금을 깎아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이런 일련의 조치는 과징금 부과 합리화란 이름 아래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국회는 2011년 대규모유통업법을 통과시키면서 취지를 “대규모유통업자의 불공정행위는 납품업자의 열등한 처지를 이용해 은밀하고 교묘하게 이뤄져 근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징금을 합리화하면 은밀하고 교묘한 불공정행위가 근절되는 것인지 김 부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