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크로스 세인트 판크라스역은 영국 런던 지하철 노선 6개와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고속철 유로스타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다. 여기서 10분 정도 걸으면 리젠트 운하 옆으로 흰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영국의 주요 비영리조직(NPO) 중간지원조직이 모여 있는 ‘소사이어티 빌딩’이다.
건물 외벽에는 비영리기관장연합회(ACEVO), 전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NCVO), 영국국제개발원조단체협의회(BOND) 등 입주 단체 이름이 적혀 있다. 이들은 영국 정부에 NPO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NPO 싱크탱크’이자 시민사회 변혁을 이끄는 초석 역할을 한다.
◇정부에 현장 목소리 전하는 ACEVO=2011년 영국 브리스톨 인근의 윈터본 뷰 요양병원이 장애인 환자를 학대·방치한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영국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릴 만한 대형 스캔들이었다. ACEVO는 즉각 영국 정부와 보건감독위원회(CQC)를 도와 전국의 장애인시설을 평가하는 ‘윈터본 뷰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했다. 지난달 발행된 2차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와 NPO, 언론의 공조로 정부 기준에 미달하는 장애인시설 75%가 폐쇄됐다. ACEVO의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87년 설립된 ACEVO는 1400곳의 NPO 대표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회원들에게 양질의 리더십 교육과 사업모델,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해 NPO가 기업만큼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도록 돕는다. 또 복지·청년·보건·여성 등 300개 분야를 나눠 정기적으로 단체장 모임을 개최해 다양한 회원들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에 전달한다. ACEVO가 윈터본 뷰 스캔들 때 유관기관과 신속히 협력해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사건 직후 보건 분야 정기 모임에서 나온 의견 덕택이었다. ACEVO 회원들은 최근 함량 미달인 장애인시설을 퇴출시키는 법을 제정하자고 정부 시민사회청에 제안했다.
지난달 2일 만난 아심 싱 ACEVO 공공정책국장은 “나눔 문화의 핵심은 정부와 NPO, 기업 간 긴밀한 파트너십”이라며 “‘좋은 협력’만이 지역 곳곳의 사회 문제를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 참여 촉진하고 ‘정책 장벽’ 없애는 NCVO=“정부 실업기금을 받는 사람들은 지역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꺼립니다. 자원봉사가 노동으로 인정돼 기금을 받지 못할까 걱정해서죠. 정부 정책과 현장의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난달 6일 만난 크리스틴 스티븐슨 NCVO 자원봉사개발실장은 “NCVO의 역할은 자원봉사 분야의 성과를 극대화하고 봉사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스티븐슨 실장은 “영국에서 자원봉사는 시민참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면서 “NCVO는 특히 지역 활성화 프로그램의 주민 참여율 제고 방안과 최근 동향 등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NCVO는 고령화 사회, 계층간 빈부격차 등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손잡고 매년 6월 ‘자원봉사자 주간’을 갖는다. 자원봉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자원봉사자의 노고를 치하해 대중의 자원봉사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마이클 버트위슬 NCVO 선임정책관은 “영국에 자원봉사단체가 8만여 곳이 있는데 참가자들 절반 이상이 기부도 한다”면서 “자원봉사단체가 국민에게 양질의 봉사 경험을 제공해 기부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부가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에 해외원조 방향 제시하는 BOND=BOND는 난민 지원, 지진 피해 구호 등 국내외 긴급구호를 할 때 영국 정부와 소속 단체가 한목소리를 내도록 돕는 ‘창구’ 역할을 한다. 영국월드비전, 국제구세군, 영국해비타트 등 국제구호개발기구 300여 곳이 가입돼 있다.
지난달 7일 만난 벤 잭슨 BOND 대표는 “정부와 NPO가 협력해 한목소리로 국제 재난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라며 “정부 원조를 어느 나라에 어떻게 제공할지 제안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영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언한다”고 말했다.
BOND는 최근 영국 정부의 원조가 세계 혁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있다. 중복지원을 막을 수 있도록 구호단체의 활동지역을 재배치하고 현지 NPO에 투자하는 것 등이 BOND가 제시하는 방안이다. 잭슨 대표는 “빈곤국의 자립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선 정부와 시민사회, 학계 등 여러 분야가 긴 안목을 가지고 힘을 합쳐야 한다”며 “각 분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해 지속적으로 정부에 협력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글·사진 양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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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문화 확산, 법·정책 재정비가 답이다] 정부에 NPO 목소리 전달하고 정책 제안도
입력 2015-11-18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