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IS의 종말론…‘종말 마케팅’으로 전 세계 젊은이 유혹

입력 2015-11-18 18:21 수정 2015-11-19 00:28

지난해 여름 이슬람국가(IS)의 군사작전은 좀 이상했다. 시리아 동북부 라카를 근거지로 유전지대를 장악한 IS는 이라크 북부로 진격해 대대적 공세를 폈다. 6월 10일 인구 180만명의 모술을 점령했고, 라마단이 시작된 6월 29일 칼리프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군사전략상 다음 전선(戰線)은 당연히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州)였어야 한다. 이 땅을 차지하면 바그다드를 목전에 둘 수 있다. 전투력이 한창 고조돼 있었지만 IS는 요충지를 잠시 놔둔 채 다시 시리아로 눈을 돌렸다.

달려간 곳은 시리아 서북부 작은 마을 ‘다비크’였다. 쓸모없는 촌구석에 IS 군대가 나타나자 이곳을 점유하던 온건파 자유시리아군은 어리둥절해했다. IS는 8월 초 다비크를 점령한 뒤 마을 언덕에 칼리프의 깃발을 꽂고 SNS에서 성대하게 자축했다.

석 달 뒤 ‘참수 동영상’을 공개했다. 미국인 피터 카시그를 살해하는 이 영상은 다비크를 배경으로 촬영됐다. IS 대원 ‘지하디 존’은 카시그의 머리를 발치에 놓고 이렇게 말했다. “다비크에 첫 아메리칸 십자군을 묻는다. 나머지도 어서 오라.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국가 수립을 선언한 직후 IS는 영어 웹진을 발간했다. 7월 5일 1호부터 현재 11호까지 나왔다. IS의 이데올로기를 알리는 선전 매체인데, 그 제호도 ‘다비크’다.

이렇게 다비크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비크’ 각 호의 첫 페이지에 드러나 있다. 사실상 IS 창설자인 알자르카위의 똑같은 말이 매번 실린다. “이라크에서 시작된 불꽃은 알라의 뜻에 따라 계속 뜨거워질 것이다. 다비크에서 십자군을 태워버릴 때까지.”

이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했다는 ‘하디스’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로마 군대가 쳐들어와 다비크 또는 알아마크에 진을 치고 무슬림 군대와 최후의 전투를 벌일 때 비로소 세상의 종말이 시작된다.”

‘다비크’ 4호는 12쪽에 걸쳐 이 예언을 다뤘다. IS는 ‘로마’를 서구세계로, ‘무슬림 군대’를 진정한 칼리프국가의 군대로 해석한다. 최후의 전투는 다비크에서 벌어지며 칼리프의 군대가 승리한 뒤 ‘마흐디(메시아)’가 나타나 무슬림을 구원한다고 믿고 있다.

이 종말론의 ‘렌즈’를 들이대지 않고는 IS의 기이한 행태를 이해할 길이 없다. 구원의 날이 오려면 최후의 전투가 벌어져야 하고, 그러려면 십자군이 쳐들어올 칼리프국가가 있어야 하며, 그 전장(戰場)은 다비크여야 한다. 그래서 알바그다디는 스스로 칼리프가 됐고, 지하조직인 알카에다와 결별해 국가 수립을 선언한 뒤 다비크로 간 것이다.

‘다비크’ 2호 표지기사는 ‘The Flood(홍수)’란 제목 아래 IS를 ‘노아의 방주’에 빗댄 글이었다. 알카에다의 영어 웹진 ‘Inspire(영감을 주다)’는 외로운 늑대들에게 현지 테러를 부추겼지만, ‘다비크’는 끊임없이 “시리아로 오라”고 주문한다. 수많은 젊은이를 IS로 불러들인 건 결국 저 방주에 타라는 ‘종말 마케팅’이었다.

IS가 종말론에 꿰맞춘 하디스 구절 중 “로마 군대가 80개 깃발을 들고 온다”는 대목이 있다. 터키가 미국에 IS 공습 기지를 제공하자 IS 추종 트위터마다 “깃발이 38개로 늘었다”는 글이 돌았다. ‘80개 깃발’을 최후의 전투에서 맞설 적국(敵國) 수로 해석한 것이다. ‘다비크’ 11호는 더 늘어난 ‘십자군 동맹 62개국’ 명단을 공개했다. 한국도 있다. 어쩌면 파리 테러도 깃발 80개를 채우기 위해 적을 늘려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이런 종말론이 이렇게 세력을 얻는 세상은 뭔가 잘못돼 있다. 그래도 이 문명을 종말론에 넘겨줄 순 없는 일이다.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