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된 유럽’ ‘하나의 유럽’을 소망했던 유럽연합(EU)의 꿈이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위협으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열린 국경을 통한 유럽인들의 자유로운 이동, 중동분쟁으로 인해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 등으로 유럽의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발생한 급진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로 자유와 개방, 낭만의 상징이던 유럽은 ‘위험한 대륙’이 돼버렸다.
◇기로에 선 솅겐 조약…“테러 위협에 국경 단속 불가피”=솅겐 조약은 ‘열린 유럽’을 대표하는 제도다. 유럽 국가들은 솅겐 조약을 통해 역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국경에서 검문검색과 여권검사를 면제해 인적 교류를 원활히 하겠다는 취지로 체결됐다. 1985년 독일 프랑스와 베네룩스 3국이 국경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스위스 등 26개국이 솅겐 조약에 가입해 있다.
유럽인들에게 자유를 주는 솅겐 조약은 그러나 테러 발생을 용이하게 한다는 지적에서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이번 파리 연쇄 테러에서도 유럽의 ‘뚫린 국경’은 테러 계획을 용이하게 했다는 것이다. 테러범들은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을 넘나들면서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IS의 수도 격인 시리아 라카를 공습한 뒤인 16일 베르사유궁에서 가진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EU 차원의 국경 강화를 요구했다. 그는 “EU는 외부 국경을 좀 더 효율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다시 국가별로 국경을 통제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EU를 해체할 수밖에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다른 국가에서 이미 국경 통제는 시작됐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과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국경 통제에 돌입했고 다른 국가들도 이 흐름에 동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확산되는 이슬람 혐오증과 ‘진퇴양난’ 난민 정책, EU 분열 가져올까=지중해와 육로를 통해 난민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점은 유럽을 급진주의 무장세력의 테러에 한층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중동 지역의 이슬람권 국가에서 급진주의 세력과 관련 된 인물이 난민으로 위장해 들어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유럽 각국으로 흘러들어간 중동 출신 난민은 60만명이 넘는다.
이전까지는 시리아 등지로 떠났다가 IS 전사가 돼서 돌아온 테러리스트들을 경계했다면 이제 양상이 달라졌다. 이번 파리 연쇄 테러 용의자 중 2명이 그리스에서 난민 등록을 한 후 프랑스로 흘러든 것이 확인되면서 국경 문을 닫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난민정책을 두고 유럽이 빚고 있는 갈등은 자칫 EU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부정적 입장이었던 영국은 난민 수용 의무 완화 요구를 EU 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무슬림 이민자가 많은 프랑스에서 계속해서 테러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유럽 내 이슬람 혐오증을 확산시키고 있다. 유럽이 국경을 열어두고 이슬람권 국가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이들과 융합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국가 내부에서는 반이민·반이슬람을 주장하는 극우 세력과 반대 세력이 갈등하고, 유럽 국가들끼리는 난민정책 등으로 대립하면서 전반적으로 분열의 길을 걷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영국 BBC방송은 18일 “유럽의 열린 국경은 난민 위기가 시작됐을 당시부터 이미 문제시돼 왔다”면서 “파리 테러 이후 국경을 강화하지 않고 유럽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은 ‘하나의 유럽’보다는 ‘안전한 유럽’을 만들어야 할 때라는 불안감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임세정 기자 fish813@
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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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1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