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주의가 만들어낸 걸그룹의 소녀 표상… 10대들 주체적 소녀상 형성 과정 왜곡시켜”

입력 2015-11-18 20:52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 ‘걸그룹 열풍’에 대한 비판서가 나왔다.

한지희(경상대 영문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우리 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경상대출판부·표지)에서 상업주의적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걸그룹 소녀들이 현대적 소녀의 표상으로 제시되면서 10대 소녀들의 주체적인 소녀상 형성을 왜곡하고 있으며, 소녀의 성과 육체를 다루는 것을 절제하던 사회적 금기를 허물어뜨렸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성인 여성이 표상하는 육체적 섹시미와 10대 소녀가 표상하는 청순미의 융합체라는 공통점을 가지는 걸그룹 소녀들이 현대적 소녀의 표상으로서 제시되고 있다”면서 “상업주의 B급문화가 제시하는 소위 ‘건강한 섹시미’의 전방위적 영향 하에서 한국의 10대 소녀들은 자존감과 독립성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로 성장하는 미래를 상상하기보다는 섹시미를 갖추어 남성의 판타지를 만족시켜 주는 타자로 존재하는 미래를 수용하며 성장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20세기에도 상업광고는 거의 대부분 성인 여성이 등장하는 성적인 암시로 코드화되었지만 21세기 접어들어 이제는 보고 듣고 먹고 입는 거의 모든 소비재 상품에 노골적으로 10대 소녀의 성이 덧입혀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현재의 걸그룹 열풍을 “성인 여성의 육체를 10대 소녀의 육체로 대체하여 소녀의 육체 위에 포르노그래피적 에로티시즘의 코드를 입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특히 “대중문화의 전경에 전시되는 소녀의 표상들이 과도할 정도로 포르노그래피적 에로티시즘에 경도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배후로 상업주의와 남성 중심적 욕망을 꼽았다. 한 교수는 21세기 걸그룹 소녀들의 계보를 “1920년대 한국의 모단 걸 직업여성 소녀들의 후예 격”이며, “조선의 풍류문화를 대표하는 기생 소녀인 춘향에 해당”하고, “미국의 음란한 소녀의 표상인 ‘롤리타’ 그리고 일본의 음란한 소녀의 표상인 ‘나오미’와 자매 관계”라고 분석한다.

‘소녀들의 전성시대’를 노골적인 소녀의 성 상품화 전략으로 파악하는 한 교수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10대 소녀들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그는 “10대 소녀들은 노골적으로 성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안무를 수행한 대가로 예인 소녀들이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양식을 바라본다”며 “걸그룹 소녀들이 수행하는 섹시한 소녀의 기표를 이상적인 소녀성의 기표로 혼동하면서 그들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매우 부정적으로 억압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걸그룹 열풍은 성인 남성들이 소녀에 대해 성적 욕망을 느끼거나 소녀의 육체와 성을 상품화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끼던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놓았다고 분석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