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을입니다.” 영화 ‘카트’에는 대형마트 매장 직원 탈의실에 이런 문구의 대자보가 붙어 있는 장면이 나온다. 기업이 진상고객들의 부당한 ‘갑질’을 방치한 채 감정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로서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대응하는 게 최선이다. 웹툰 ‘송곳’은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프랑스계 유통업체 까르푸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이 웹툰은 노동조합 조직화의 이론과 실제를 담은 교본으로 읽을 수도 있다. ‘바닥을 향한 경쟁’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척박하고, 딱한 현실이 주된 배경이고, 희망적인 판타지의 요소가 배제돼 있다. 이 점에서 ‘송곳’은 역시 비정규직의 노동현장을 다뤘지만, 화이트칼라들의 직장 내 정치와 성공신화의 낭만을 담은 웹툰 ‘미생’과 차별화된다.
웹툰 송곳과 그 스토리 및 대사를 거의 그대로 살려 방영 중인 동명의 드라마는 영웅적인, 혹은 의인(義人)인 주인공 둘을 앞세운다. 산전수전 겪은 노동운동가 출신 노무사 구고신과 푸르미 마트의 강직한 인물 이수인 과장이 그들이다. 특히 구고신의 어록들은 송곳처럼 우리의 인식을 찌른다.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 이 둘을 제외한 인물들이 너무 도식적으로 그려지는 이유도 이 말로 설명된다. 한심한 노동자와 그만큼 한심한 사용자 측 말이다. 그게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수준이자 이 웹툰과 드라마의 한계다.
해고위기에 몰린 한 불법 파견근로자가 “경쟁에서 져서 그런 걸 어쩌라구요. 본인이 책임져야죠!”라고 말한다. 구고신은 반박한다. “패배는 죄가 아니요! 우리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거요. 국가는 평범함을 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요!” 이런 인식의 공유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싹튼다. 12부작으로 예정된 주말 드라마 ‘송곳’은 현재 8회까지 방영됐고, 29일로 예정된 종영 직후 웹툰 연재도 종결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웹툰 ‘송곳’
입력 2015-11-18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