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남호철] 버려진 것에 대하여

입력 2015-11-18 18:42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차갑게 식어버리고 볼품없이 허옇게 꺼진 연탄이지만, 불을 활활 피울 때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웠고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연탄은 30∼40년 전만 해도 겨울철을 나기 위한 필수품 중 하나였다. ‘국민 연료’로 인기를 끌었던 연탄은 석유와 가스가 난방을 책임지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자리를 내주고 쓸쓸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에 맞춰 석탄을 캐내던 탄광도 서서히 문을 닫았다.

이렇게 버려진 탄광이 얼마 전 다시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지독한 가뭄 때문이다. 물 부족에 시달리던 충남 보령시가 1980년대 말부터 1994년까지 석탄합리화 조치로 문을 닫았던 보령시 인근 옥마산과 성주산 주변의 폐 갱도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을 정화해 물 부족이 심한 곳에 공급하기로 했다. 폐광에서는 하루에 1t가량의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물 한 방울이 아쉬운 상황에서 ‘천군만마’로 보였을 것이다.

관심을 넘어 ‘대박’을 맞은 광산도 있다. 경기도 광명의 가학광산은 1912년 일본인들이 처음 개발한 뒤 1972년 7월까지 60년간 금과 은·동·아연 등을 채굴하던 곳이다. 전체 면적은 34만2797㎡로 8개 층에 걸쳐 갱도가 형성됐고, 총연장은 7.8㎞에 이른다. 깊이는 최대 275m에 달한다. 광산은 1972년 여름에 발생한 홍수로 쌓아놓은 광석 더미가 인근 마을을 덮치면서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광업 중단으로 40년간 폐(廢)광산이었던 이곳이 동굴테마파크로 개발되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동굴 내부에 차 있던 물을 빼내고, 수로를 설치하는 등 갱도 정리 및 안전 보강시설 공사를 진행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공연장을 꾸며 동굴음악회 등을 개최하자 시민들이 대거 몰렸다. 관광객 유치 성공으로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연간 170억원, 일자리창출 효과는 연간 400만명에 이른다는 평가다. 폐광을 활용한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호주 블루마운틴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폐광이 아닌 폐철로로 대성공을 거둔 곳도 있다. 강원도 정선의 ‘레일바이크’(철길을 이용한 자전거)는 산골지역 효자 관광상품이다. 정선군 북면 구절리∼아우라지까지 옛 정선선 철길 7.2㎞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관광객들이 급증하면서 새벽 줄서기 풍경까지 낳았다. 2005년 개장한 뒤 10년 만에 누적 탑승객이 310만명을 돌파하고 순매출액이 290억원가량,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1500억원으로 추정되는 등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밖에 괴산 산막이 옛길, 평창 옛길 등 버려진 길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변모하는가 하면 폐교가 변신해 마을의 문화예술 공간 또는 캠핑장 등으로 재탄생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휴대전화 보급이 늘어나면서 설 자리를 잃었던 공중전화 부스는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 시민이 대피할 수 있는 아이디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골치 아픈 건물이나 버려진 자원들이 얼마나 많을까. 대부분의 지자체는 복잡하게 얽힌 이권으로 인해 이런 폐자원들을 들여다보기도 귀찮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돌아가는 지자체는 그런 것에 아이디어를 적용해 스스로 창조하고 만들어 나간다. 지금 쓸모없다고 함부로 발로 차지 말아야 한다. 언제 귀중한 자원으로 변모할지 모를 일이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