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20일] 정의를 뛰어넘는 사랑

입력 2015-11-19 18:25

찬송 : ‘외롭게 사는 이 그 누군가’ 291장(통 41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나 4장 5∼11절


말씀 : 요나는 악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한 것을 보면서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정말 망하는지 망하지 않는지 지켜보고 있는 요나를 위해 하나님은 아주 작은 사건을 통해 소중한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첫째, 요나의 정의감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요나는 니느웨 성의 장래를 지켜보기 위해 성읍 동쪽에 자기를 위한 자리를 하나 만들었지요.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위선적인 회개로 망하기를 바라면서 성 밖에 나가 초막을 짓고 40일을 기다리며 지켜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요나를 향해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시면서 하나님은 아무리 정당한 정의감일지라도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는 자에 대한 사랑보다 더 높고 귀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축복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한 작은 사건을 통해서 요나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요나는 지금 성 밖에 있으면서 니느웨가 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때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회개를 인정하지 못하는 요나를 위해 한 작은 사건을 준비하셨습니다. 먼저 성 밖에 있던 요나는 그늘을 만들어준 박 넝쿨 하나에 굉장히 기뻐하다가 벌레 한 마리 때문에 또 엄청나게 분노합니다. 한번은 악한 자들은 쉽게 용서받으면 안 된다며 분노했던 요나가 이번에는 한낱 벌레 한 마리 때문에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의에 대한 사람의 기준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우리는 한계를 가진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아주 많은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은 정의를 뛰어넘는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분노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지요. 그래서 인간의 분노는 절대적인 분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나는 자기 것도 아닌 일년생 풀을 그렇게 아꼈습니다. 그렇다면 풀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인 앗수르의 악인들을 사랑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토록 사랑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이방인들도 담대히 그분 앞에 나아올 수 있음을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어린아이들만 12만명이 넘을 정도로 큰 성 니느웨를 소중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고 자신과 주변에 집중되어 있는 사랑을 확대해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온전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성도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에스더 목사(요나3일영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