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직불금 대란 예고] 2000억 늘려도 모자랄 판에 2000억 줄이려는 국회

입력 2015-11-17 21:10


국회가 쌀값 폭락에도 불구하고 직불금 예산 삭감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풍년으로 내년 초 직불금 지급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존 예산안의 50% 가까운 증액이 요구되는 상황인데 국회가 이를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내년 2월 직불금 지급 대란이 우려된다.

◇예산 확정 전에 예비비 지출 먼저 생각하는 국회=올해 쌀 생산량은 432만7000t으로 지난해보다 2.0% 늘었다. 3년째 풍년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정부는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쌀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전국 쌀 평균가격과 목표가격 차액의 85%를 변동직불금 형식으로 지급하고 있다. 쌀값이 폭락해도 그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셈이다. 문제는 지난 8월 내년 예산안 책정 때 예상했던 올해 쌀값보다 현 시세가 더 낮아져 정부가 보전해줄 직불금 예산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초 국회에 올해치 쌀 변동직불금 예산을 기존 4193억원에서 1355억원 늘어난 5548억원으로 증액 요청했다. 그러나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예산조정소위원회는 오히려 정부안보다 2000억원 삭감키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주도한 농해수위 야당 측은 정부안보다 줄어든 2000억원으로 정부가 쌀을 더 매입하면 쌀값 하락 폭이 줄어들 것이고 자연스럽게 지불해야 할 직불금 수요도 줄어든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국회 논리라면 내년 2월 직불금 지급 때 최소 2000억원 이상이 펑크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나 쌀 전문가들은 국회의 주장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구조적으로 수요와 공급 불균형인 쌀 시장은 논 면적의 밭 전환 등 중장기 대책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2000억원으로 매입할 수 있는 양은 10만t인데 그 정도 가지고 대세 하락기인 쌀 가격을 반전시키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단기 수급안정 대책으로 20만t의 쌀을 격리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 역시 “2000억원으로 쌀 시장이 안정화된다면 10년 전에 쌀 문제는 해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쌀값 폭락에 이어 농민들 이중고 우려=올해 쌀값은 80㎏ 기준으로 15만원대가 곧 무너질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농업경제연구원조차 올해 쌀값을 15만4000원으로 예상했다. 이 예상치대로라면 변동직불금은 5991억원이 필요하다. 설령 18일 열리는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변동직불금 예산 2000억원 삭감안이 백지화된다 해도 2000억원 가까이 추가 지출이 예상된다. 결국 내년 2월 직불금 지급을 위한 예비비 지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직불금 지급을 위해 예비비가 사용된 전례가 없었다는 점이다. 1600억원 정도의 쌀소득보전기금을 활용해 일부 모자란 직불금을 충당한 적은 있지만 예비비 지출은 내년이 처음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직불금이 법적 의무지출 사항이기 때문에 예비비를 활용해 언젠가 지급되겠지만 예년처럼 설 이전 지급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통상 직불금 수입을 예상해 설을 준비하는 농가에 직불금 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확보된 직불금 예산을 어느 지역에 먼저 지급해야 할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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