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린 테러리스트 곁에선 시리아 난민 아흐마드 알무함마드의 여권이 발견됐다. 이 테러범이 시리아 난민인지, 시리아 난민으로 위장해 프랑스로 건너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 여권 한 장은 난민을 테러와 한데 묶어 공포심과 적개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파리 테러의 그림자는 짙다. 미국 26개 주에서 시리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난민으로 위장한 테러범이 있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이런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16일 “난민은 우리가 파리에서 목격한 다에시(이슬람국가·IS)의 파괴적 공격을 피해 도망친 이들”이라며 “폭력을 피해 도망 온 난민을 추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파리 테러는 한국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의 위태로운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도 힘든데 남 도울 여력이 없다’는 고까운 시선에다 ‘난민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지고 있어서다.
인도적 체류자로 2년째 국내에 머물고 있는 압둘 아지즈(가명·29)씨는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테러 때문에 시리아 난민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것 같다. 내년 1월 임시체류 허가를 갱신할 때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에 살고 있는 무스타파(가명·33)씨는 “시리아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한국에서도 쫓겨나면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박지훈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은 “시리아 난민은 IS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쳐온 이들”이라며 “IS가 저지른 테러는 시리아 난민에게 또다시 고통을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시리아 난민은 ‘우리를 받아줄 곳은 이제 바다밖에 없다. 한국에서 내몰리면 지중해가 아닌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법무부는 파리 테러가 기존의 난민 심사·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지금까지 난민 심사를 받은 시리아 출신 705명 중 단 3명만 난민으로 인정됐다. 621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 신분이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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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18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