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금인출기 돈은 나의 것”… 스포츠토토 중독된 새마을금고 지점장

입력 2015-11-18 04:03
35세 젊은 나이에 충남의 한 새마을금고 영업점장이 된 A씨. 직급은 대리였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점장에 발탁됐다. 사내 평판도 좋았다. 앞날이 보장된 듯했던 그는 우연히 찾은 인터넷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빠져들었다. 경기 결과를 예측해 거액을 베팅하는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그는 재산을 탕진하다시피 했다.

‘도박의 늪’은 그를 집요하게 옭아맸다. 본전 생각에 사로잡힌 A씨는 도박자금을 마련하려고 자신이 관리하는 새마을금고 영업점의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ATM 뒷문을 열고 현금박스에 있는 돈을 꺼내 스포츠토토에 쓰기 시작했다. 지난 7월부터 불과 한 달간 20여 차례에 걸쳐 2억4000만원을 꺼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지난 16일 A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A씨 사례처럼 인터넷 도박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달 27일 대검찰청 간부회의에서 “인터넷 도박중독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고 다른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근절책을 주문했었다. 계명대 산학협력단의 ‘불법사행산업의 효율적인 감시방안 및 근절대책 연구’ 보고서(2013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행산업은 기존 경마·경정·경륜·소싸움 등에 2010년 스포츠토토가 추가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종류가 많다. 불법 도박사이트 규모는 24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그동안 인터넷에 도박장을 개설해 운영하는 ‘공급자’ 처벌에 주력해 왔다. 대구지검은 지난달 28일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엠손소프트)를 개설·운영해 온 일당을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 기술개발팀과 홍보팀, 중국 지부까지 두고 체계적으로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온 이들은 3년간 800억원을 벌어들였다. 검찰은 이들에게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죄’를 적용했다. 대검 관계자는 17일 “그동안 단순 도박개장죄 등을 적용하던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라며 “도박공간을 개설하는 행위를 더 철저히 처벌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상대적으로 처벌이 약했던 ‘수요자’ 처벌도 강화된다. 통상 도박에 참여한 사람의 베팅액이 억대를 넘지 않고 상습적이지 않으면 검찰은 기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불법 도박사이트의 피해자로 볼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도박 행위자의 기소 기준이 되는 총 베팅액을 대폭 내리고, 3회 적발 시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를 하는 등 수요자 처벌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나성원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