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나기 사랑의 연탄은행’] “연탄은 가난한 노인들의 연료… 도움 절실”

입력 2015-11-17 19:54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가 16일 서울 노원구 서울연탄은행 사무소에서 연탄사용 가구 밀집지역을 지도에서 가리키고 있다. 전호광 인턴기자
지난해 겨울 서울 노원구 중계로 백사마을에서 연탄배달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연탄은행 제공
“할머니 어제는 따뜻하게 주무셨어요?”

16일 서울 노원구 중계로 서울연탄은행 사무소에서 만난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허기복(59) 목사는 전화기 너머 이웃들의 안위를 묻느라 바빴다.

“겨울이 시작되면 정신없어요. 혹여 연탄이 부족해 냉골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죠.”

연탄은행 사무소를 등지고 있는 백사마을은 총 1000가구 중 600가구가 연탄을 때는 대표적인 연탄 소비지다. 허 목사는 2004년 겨울 이곳에 서울연탄은행을 설립했다. 은행에 돈을 넣어 놓듯 창고에 연탄을 쌓아두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이 필요한 만큼 연탄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 농촌마을에서 자란 허 목사의 별명은 ‘허기진’.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국물로 양을 늘린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고 길거리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기도 했다.

“쌀과 연탄을 외상으로 들여놓고 갚지 못해서 어머니가 시달리는 모습을 자주 봤죠.”

1978년 장로회신학대 재학 시절 평생 가난한 사람을 돕고 살겠다고 결심했다. 1989년 목사가 된 그는 서울 망우동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다가 1994년 강원도 원주로 내려갔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주에 사정이 어려운 교회가 있다는 얘길 듣고 사표를 낸 뒤 무작정 내려갔어요. 교인이 50명도 안 되는 허름한 교회였습니다.”

얼마 후 외환위기가 닥치자 실직자와 노숙인이 거리에 넘쳤다. 그는 신학생 시절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때라고 판단했다. “진정한 봉사는 교회 밖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정보지와 유선방송을 통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1000원 모으기’ 캠페인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 원주 쌍다리 밑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1000장의 연탄을 후원받아 원주에 연탄은행 1호점을 설립했다. 무료급식을 받던 한 할머니가 연탄 살 돈이 없어 냉골에서 겨울을 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연탄은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서울에서도 주민들의 지원 요청이 쇄도하자 백사마을에 서울연탄은행을 설립했다. 이후 연탄은행은 부산 인천 대구 대전 전주 등 전국으로 확산됐으며 현재 전국 31개 지역에 33호점까지 생겨났다. 2011년에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 해외 연탄은행 1호점을 설립해 매년 연탄 10만장씩을 보내고 있다.

연탄은행 설립기준에 대해 허 목사는 “기독교적 사고를 갖고, 지역을 섬기겠다는 의지가 있는 교회나 기관에 연탄은행 설립을 허락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연탄사용 가구가 300곳 이상인 지역에 위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 목사는 향후 통일한국을 대비해 북한에도 연탄은행을 세울 계획이다.

“우선 내년에 중국 단둥을 방문해 북한주민들의 실상을 파악할 예정입니다. 이후 여건이 마련되면 전국 연탄은행 33곳이 각각 북한에 하나씩 연탄은행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연탄은행은 매년 평균 전국에 300만장 이상의 연탄을 지원하고 있다. 연탄배달업자와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고 동네마다 연탄사용 가구를 수소문해 매년 자체적으로 연탄사용가구 조사도 한다. 올해 파악한 전국의 연탄사용 가구는 16만8000가구다. “연탄사용자의 평균 연령은 77세로 그 중 80% 이상이 독거노인입니다. 경제력은 취약하고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죠. 누구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입니다.”

연탄은행과 국민일보는 300만장을 목표로 ‘사랑의 연탄’을 모으고 있다. 연탄후원은 연탄 한 장 값인 500원부터 할 수 있으며 연탄가스배출기 교체를 위한 후원은 가구당 5만원, 연탄보일러 교체 후원은 가구당 20만원부터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 후원만으로 연탄은행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후원자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연탄은행은 후원·자원봉사 참가자들에게 기부금 영수증과 봉사활동 확인서, 연탄천사증 등을 발행해준다(1577-9044·babsang.or.kr).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