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쫄지 마, 파리지앵

입력 2015-11-17 18:36

1972년 9월 5일, 뮌헨올림픽 기간 중 팔레스타인 단체 ‘검은 9월단’이 일으킨 테러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참사이다. 이스라엘 선수 11명 전원 사망, 테러범 5명 사살·3명 생포, 진압 경찰 1명 사망. 당시 인질극 상황이 TV를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됐다. 흑백 화면에 나온 검은 복면의 테러리스트 모습은 초등학생인 나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로 다가왔었다.

‘뮌헨 학살’이 일단 종료되자 올림픽 취소가 논의됐다. 하지만 에브리 브런디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취소가 테러에 굴복하는 것이고 그들이 바라는 바라고 각국에 호소했다. 대회는 일시 중단됐었지만, 올림픽기를 조기로 단 채 진행됐다. 테러에, 공포에 굴하지 않는 결정이었다.

지난 1월 파리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로 17명이 희생된 직후 프랑스 의회 내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97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라마르세예즈’가 불려졌다.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프랑스 대혁명 때 군가로 만들어져 구체제와 싸우는 자유시민들의 행진곡이었던 라마르세예즈는 배타적이고 섬뜩한 가사 때문에 국가 지정 이후에도 의회에서는 불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파리 연쇄 테러 이후 상·하원 합동회의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의원들은 기립해 또 국가를 제창했다. 자살 폭탄이 터진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프랑스-독일전)에서도 라마르세예즈가 울려 퍼졌다.

18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웸블리구장에서 벌어질 축구 A매치 프랑스와 잉글랜드전도 취소가 논의됐다. 감독은 불안하면 불참해도 된다고 했지만 프랑스 선수 전원은 테러리즘에 물러서지 않겠다며 경기 진행을 강력히 원했다. 영국도 윌리엄 왕세손의 관전과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라마르세예즈 합창으로 연대를 과시한다. 야만적 테러리즘에 맞선 위대한 저항과 연대이다. 인간의 DNA에는 미친 폭력을 제압하고 넘어서는 그 무언가 있다. 쫄지 마, 파리지앵!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