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도시에서 녹색도시로
과거 1960년대 초반 산업시설이나 자본이 척박하던 시절 울산과 구로공단을 시작으로 70년대에는 구미 전자 공단이 조성되면서 한국의 산업화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공단 조성 당시 오직 생산 기능만 강조한 공장을 짓다보니 미적 요소를 갖춘 도시 형성 공장 건설은 꿈도 꾸지 못해 어둠침침한 회색 공단으로 자리잡았다. 대부분 산업단지가 공장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를 내뿜고 거리 곳곳에는 어둠 칙칙한 분위기를 연출해 공해와 악취 등 회색도시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구미는 확실히 달라졌다. 산업단지 진입도로변 빈터 곳곳에 꽃과 나무 등 아름다운 조경시설을 만들어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특히 전자산업 중심인 구미공단은 독한 연기를 내는 다른 산업단지 공단과 달리 상대적으로 깨끗한 편이어서 조경이 더해지며 한결 새로워졌다. 70년대 조성한 노후화한 1공단은 물론 나머지 구미의 공단도 아름다운 경관을 갖춘 공장건물이 들어서면서 과거 회색 공단 이미지를 탈피해 캠퍼스형 공장 도시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1000만 그루 나무심기를 추진한 게 크게 기여했다. 공단 곳곳 자투리 공터와 시가지 도로변 녹지공간에 백일홍 등 꽃나무와 잔디 등 다양한 식물을 심어 도로변에 정원을 조성해 편안하고 아늑한 쉼터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동안 심은 나무가 무성히 자라 도심 곳곳에 아름다운 녹지공간을 조성하며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약 10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은 쉼터를 얻게 됐다. 미세먼지 농도도 10분의 1 이상 줄었다. ‘나무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인동 도시숲과 송정 철로변 숲길, 해평 송곡리 느티나무 숲길은 2013년 산림청이 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가로수 62선’에 이름을 올렸다.
인동동 인동육교에서 구평동 국민은행까지 3.1㎞에 이르는 대로에 마련된 인동 도시숲은 ‘도심지 안의 숲’이다. 이곳 인도는 10년 전만 해도 가로수가 많지 않아 한여름에는 햇볕을 피하기도 어렵고 불법 주차와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시가 2007년부터 3년간 녹색자금 14억원을 포함해 모두 35억원을 들여 도시숲을 만든 것. 인도에 대왕참나무·느티나무·소나무 등 1100그루, 영산홍을 비롯한 2만6000본의 관목·잔디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책로와 휴식처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원평동 경부고속도로변 2.2㎞와 송정동 구미역사∼광평동 간 경부선철로변 3㎞ 구간에도 각각 느티나무·단풍나무 등을 심어 폭 20∼40m의 도시숲길을 조성했다.
산동면 경운대 인근 도시근교에 자리한 산동참생태숲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숲 속 교실, 목공예체험장, 꽃무릇 단지 등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됐다. 특히 공공근로 참여자들이 폐목을 활용해 만든 이색적인 목공예품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골동품 등의 볼거리, 누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목공예 체험장 운영 등으로 유치원ㆍ학생 단체는 물론, 가족단위 등 다양한 계층의 관람객들이 찾고 있는 도심 속의 명소다.
10년 간 이렇게 만든 크고 작은 공원이 45곳, 마을쉼터가 37곳 등이다. 시청, 구미우체국, 구미경찰서, 구미세관, 금오공고 등 공공기관과 기업 30곳이 담을 허물어 나무와 풀이 많은 쉼터로 변모했다.
만추의 서정 ‘황금 까마귀’
금오산(金烏山·976m)은 기암, 절벽, 폭포, 깊은 골짜기, 탁 트인 전망 등 웅장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명산이다. 먼저 금오천 제방 경사를 따라 설치된 데크를 따라 금오산 저수지에 이르면 금오산의 웅장한 모습이 수면에 비친 그림자와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이 길이 바로 금오산 올레길이다. 한 바퀴 도는데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이어 나타나는 채미정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에 포함되는 야은 길재(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768년 건립됐다. ‘채미’란 고사리를 캔다는 뜻이다. 고사리를 캐 먹고 살다 죽었다는 중국의 백이·숙제 형제가 오버랩된다.
고려가 쇠약해지자 야은은 1389년 고향 구미 선산에 내려왔다. 조선은 야은을 원했지만 그는 늙으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대신 사방에서 모여든 학자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후학의 교육에만 힘쓰다 1419년 세상을 떠났다. 이 정자는 영조 때 세워졌다.
채미정을 찾으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야은의 시비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바위에 새겨진 글은 다시 읽어도 무겁고도 헛헛하다.
계류를 가로질러 놓인 꽤 육중한 석교를 건너 흥기문(興起門)을 들어서면 우측에 채미정, 좌측에 강학 공간인 구인재가 나란히 자리한다. 채미정은 16기둥에 팔작지붕을 얹고 화려하게 채색한 정자다. 중앙은 온돌을 설치해 들문으로 구획했다. 문을 들어 올리면 사방으로 바람이 통한다. 아름답고 정갈한 공간으로 더없이 마음을 차분하고 잔잔하게 만들어 준다. 주변의 단풍나무는 선죽교의 선혈 못지않게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채미정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금오산에 올라보자. 노약자 등 등산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면 케이블카 탑승을 권한다. 구미 금오산에서는 현월봉의 약사암이 으뜸 비경이지만, 산 중턱의 도선굴과 대혜폭포에서 얻는 감흥도 각별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계곡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대혜폭포·도선굴과 마주한다.
단풍을 머금은 숲속에서 우렁찬 물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높이가 28m에 달하는 대혜폭포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의 위력이 장쾌하다. 답답함을 순식간에 날려준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오르면 도선선사가 득도했다고 전해지는 도선굴이 깎아지른 암벽 중앙에 자리한다. 길은 가파른 바위 위로 한 사람이 겨우 오를 만큼 좁다. 철근을 박아 만든 난간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철제 난간과 밧줄이 설치되지 않았던 시절, 이 벼랑길을 오르내린 옛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구미=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