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창현] 키움과 나눔이 중요하다

입력 2015-11-17 18:35

단테의 ‘신곡’에 보면 사후세계에는 천국 연옥 그리고 지옥이 있다. 천국은 말 그대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땅이다. 연옥은 천국으로 직접 가기에는 부족하지만 지옥에 갈 정도의 죄를 짓지 않은 영혼이 정화를 하면서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곳이다. 지옥은 큰 날개를 펼친 악마 루시퍼가 지배하면서 영원한 고통을 겪으며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곳이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영어로 지옥을 뜻하는 ‘헬’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조선’이라는 단어를 합성하여 만든 이 말은 현재 우리 사회가 지옥으로 느껴질 만큼 문제가 많고 고통스럽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높은 자살률이나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은 3포, 5포 세대가 거론되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한계점이 상당 부분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지적에 대해서는 ‘노오오력’이라 조롱하면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공동체를 지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지나치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GDP를 달성하고 있고 인구 5000만명 이상에 소득 2만 달러 이상의 국가를 의미하는 20·50클럽에 속한 7개 국가 중 하나다. 우리의 대중교통체계, 통신서비스, 의료서비스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수준이다. 건국 당시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던 이 나라가 70여년 만에 엄청난 고속 성장을 통해 현재 모습에 이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소위 ‘보릿고개’가 상징하는 기아(飢餓)나 절대빈곤은 대폭 축소되었고 면적 10만㎢의 이 좁은 나라가 그래도 살 만하다고 들어와 일하고 싶어 하는 동남아 국가 출신 근로자가 줄을 길게 서 있다.

대한민국이 지옥이라면 다른 대부분의 국가도 지옥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부가세가 25%라 많은 사람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스웨덴도 힘들게 느껴질 것이고, 엄청난 인종 갈등과 아울러 총기 사고가 빈발하고 살벌한 수준의 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미국도 지옥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세상 어디에 과연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가 있겠는가.

행복도는 분자 나누기 분모로 이루어진 분수이다. 자신이 가진 것은 분자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채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은 분모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분자가 커지면서 행복도가 높아진다. 그러나 문제는 분모이다. 분모가 무한대 수준이라면 분자가 커도 행복도는 제로이다. 가끔 우리는 부탄 같은 저소득 국가 국민들의 행복도가 세계 상위권이라는 보도를 접한다. 불교를 믿는 이 나라의 국민들은 현세에 그리 큰 미련이 없고 사후에 극락에 가는 것이 목표이다 보니 잘살아보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다. 분자가 매우 작지만 분모가 거의 0에 가깝다 보니 행복 수준은 매우 높다. 가진 것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더 가지고 싶은 것이 거의 없어서 행복한 것이다. 분모가 우리 수준이라면 부탄의 행복도는 제로가 될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더욱 발전시키고 더욱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 즉 분자를 키우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키움과 나눔을 통해 이를 확대해가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분모를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분모가 너무 커지다 보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저주를 퍼붓듯 지옥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나 헬조선을 외치며 어딘가 다른 곳으로의 탈출을 꿈꿀 수 있다면 그 나라는 최소한 ‘헬’은 아니다. 탈출은커녕 탈출하겠다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곳이 진짜 지옥이기 때문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