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한 자 한 자, 장인의 피땀 산고보다 더한 고통과 인내의 산물… 금속활자, 그 위대한 탄생

입력 2015-11-16 20:37
금속활자를 조판한 인판(印版)에 유연(기름)먹을 칠해 한지로 찍어내는 인출(印出) 작업은 활판인쇄의 마무리 단계다. 사람의 모발에 밀랍을 섞어 만든 인쇄도구 ‘인체’를 사용해 인쇄면을 골고루 문지른 뒤 인쇄지를 떼어낸다. 각고의 노력이 녹아든 금속활자가 천년을 간다는 한지와 만나 소중한 결과물로 탄생하는 황홀한 순간이다.
(1) 나무(황양목)에 양각으로 글자를 새긴 ‘모자(母字·어미자)’를 거푸집에 배열하는 과정. (2) 해감한 갯벌 모래를 체에 걸러 고운 입자로 거푸집을 채운다.
(3) 나뭇가지 모양의 어미자 가지판에 글자마다 쇳물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홈을 낸다. (4) 완성된 거푸집에 섭씨1200도 정도로 가열된 쇳물을 붓는 작업은 숙련된 기술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5) 쇳물이 식은 뒤 거푸집에서 떼어낸 나뭇가지 모양의 활자 가지쇠. (6) 가지쇠에서 떼어낸 낱개의 금속활자는 일정한 크기로 깎고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7) 활판인쇄물은 인출과정 이후에도 엄밀한 교정작업을 거친다.
인류의 발전은 지식 정보혁명을 통해 이루어졌다. 기록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게 된 이래 사람들은 책을 만들어 대량의 정보를 집약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금속활자는 책을 간행하고 보급하는 데 있어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내구성이 뛰어난 금속활자는 안정적이고 정확도 높은 대량인쇄를 가능케 했고, 이는 지식혁명으로 이어져 인류 역사를 변화시켰다. 금속활자는 인류 지식의 순환과 축적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고도의 기술이 집적된 금속활자는 쇠와 불과 흙, 그리고 인내의 시간이 빚어낸 ‘예술’이기도 하다. 창안 당시의 최고 하이테크 신기술을 접목한 활판인쇄는 고도로 숙련된 활자 장인의 끈질긴 열정이 오롯이 녹아들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충북 청주시 금속활자주조전수관에서 만난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임인호(52) 금속활자장은 “밤을 새워 활자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우리 조상들이 참으로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 당시 어떻게 이렇게 획기적인 인쇄법을 처음으로 창안해내셨는지 놀랍다”고 강조한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의 전통을 사명감으로 이어가고 있는 임 활자장은 스승인 동림 오국진 선생(2008년 작고)을 만나고 금속활자와 운명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고 회상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초대 금속활자장인 스승으로부터 진정한 장인정신을 배웠다는 임 활자장은 활자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을 묻는 질문에 ‘활자 탄생의 순간이 주는 쾌감’을 들었고, 어려움에 대한 질문엔 숱하게 불에 덴 화상자국을 보여줬다. 늘 펄펄 끓는 쇳물을 다루기에 화상을 달고 산다는 활자 장인은 “벌겋게 달궈진 쇳물이 옷에 튀어 살갗으로 타들어 갈 때도 쇳물을 다 부을 때까지는 무조건 참아내야만 하는 작업”이라고 이야기 한다.

작업의 어려움보단 보람과 긍지를 강조하던 임 활자장은 “빛나는 전통 위에서 이미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미래는 앞으로가 더욱 밝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세계 최초·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낸 민족의 창의적 DNA가 미래에도 꾸준하게 발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전통적인 ‘소프트 파워’ 중 문화적 긍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빛나는 유산으로 금속활자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증도가자’ 진위 논란도 결국은 유서 깊은 전통의 역사를 재확인하는 진통으로 볼 수 있다. 꾸준하게 빛을 잃지 않아 온 활판인쇄의 독보적인 역사는 그렇기에 오늘도 여전히 찬란하다.

청주=사진·글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