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 고루하지만 따스한,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다

입력 2015-11-17 20:16

‘쌍팔년도’라는 말이 있다. ‘쌍팔년도 개그’ ‘쌍팔년도 패션’ ‘쌍팔년도 사고방식’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비하할 때 ‘쌍팔년도’라는 말을 써 왔다. 촌스러움 혹은 고루함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그 쌍팔년도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tvN ‘응답하라 1988’(응쌍팔·포스터)을 통해서다.

응쌍팔은 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 골목길에 사는 한지붕 세 가족을 담고 있다. 소시민들이 살아 온 88년의 이야기가 이렇게 통할 줄은 몰랐다. 돈과 권력과 치정이 얽히고설킨 것도 아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다뤄졌다. 그런데도 시청률은 8%대를 기록 중이고(케이블TV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중파의 20%대 시청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온라인에서는 88년을 고증하는 네티즌의 열기가 뜨겁다. 유통·출판업계 등에서는 복고 마케팅이 한창이다.

제작진도 ‘응쌍팔’의 선전을 예상하지 못했다. 방송 전 신원호 PD가 “기대하지 않는다. 망할 수도 있다”고 할 정도였다. 톱스타도 등장하지 않고, 10∼20대는 전혀 겪어보지 않은 시대다보니 ‘응답하라 1997’이나 ‘응답하라 1994’보다 훨씬 모험을 한 셈이었다.

신 PD는 “이전 작품에서는 젊은 시청자들이 삐삐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연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식의 대체 품목이 전혀 없다. 철저하게 아날로그 시대라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반응이 뜨거운 것은 응쌍팔의 아날로그 감성이 시청자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응쌍팔은 ‘쌍팔년도’의 풍경을 고스란히 TV로 옮겨왔다. 배바지와 꽃분홍의 촌스러운 옷차림, 아줌마들의 똑같은 파마머리, 아저씨들의 2대8 가르마와 슬랩스틱 코미디, 골목길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평상 위 카세트테이프 등 서울 골목길 풍경이 브라운관 TV 화면 같은 색감 위에 펼쳐진다.

이런 골목길 풍경에서 정겨움을 느낀다는 시청자들의 평가가 많다. 88년도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40∼50대 뿐 아니다. 88년도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그 시절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10∼30대마저도 “그립다”는 감상을 내놓고 있다.

응쌍팔이 호평을 받는 데는 제작진의 꼼꼼한 취재와 고증도 한 몫을 했다. 신 PD는 “88년 쌍문동 골목길을 재현하기 위해 200명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 했다. 서로 다른 기억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적절히 녹여내려고 한다”고 했다.

문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