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황혼기에 접어든 12년 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남편 이승웅(74)씨는 장성한 3남매를 둔 채 상처(喪妻)했고, 아내 조정자(72)씨는 느지막이 인생의 첫 동반자를 만난 터였다.
전북 임실 출신인 이씨는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막노동부터 대리점, 식품가게, 빵 배달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자연스럽게 근검절약이 몸에 뱄고, 푼푼이 돈을 모았다.
조씨는 충남 천안에서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제법 됐다. 땅과 집을 사서 재산을 더 불렸다. 먹고살 만큼 풍족했지만 아끼는 것이 최고라 생각해 소박한 삶을 이어왔다.
이씨와 조씨는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겨 새 가정을 일궜다. 그만큼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할 때 “나중에 자식들에게 얼마만큼 주고 나머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자”고 약속했다.
‘알뜰’ ‘절약’은 부부의 삶에 아주 익숙한 단어였다. 조씨는 “(남편이) 처음 결혼해서 어찌나 알뜰하던지 흉을 많이 봤어요. 하지만 저도 어느새 닮아가고 있더라고요”라고 했다. 그는 “닭고기값 500원을 아끼려고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며 “하도 묻고 다니니까 제일 싼 가게에서 저에게는 더 이상 팔지 않겠다고 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그렇게 무섭게 아끼며 일군 값진 재산이지만 노부부는 지난 6월 서로에게 했던 오랜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이씨와 조씨는 16일 “과학인재 양성에 써 달라”며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에 전 재산을 내놨다. 서울 성북구와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상가 등 75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유증(遺贈·유언으로 재산 일부 또는 전부를 무상 증여하는 것)했다. 이날 카이스트에서 발전기금 약정식도 가졌다.
이씨는 “처음엔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을 도우려 했는데, 지금 당장 먹고 배 채우는 일보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잘 먹고 잘살게 만들 ‘좋은 머리’를 키우는 데 기부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아내의 설득에 결국 동의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남들은 좋은 자식을 배로 낳고 가슴으로 기른다고들 하는데 저는 항상 머리로 자식을 낳았다”며 “이제 (카이스트의) 좋은 자식을 이렇게 많이 갖게 됐다”고 했다. 이어 “적은 돈이지만 썩지 않는 곳에 내 재산을 기부하게 해줘 고맙다. 후세들이 윤택하게 살 수 있도록 좋은 인재를 많이 길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약정식에서 카이스트 측은 노부부에게 운동화 한 켤레씩을 선물했다. 기부 절차를 의논하러 집을 방문했더니 조씨가 밑창이 떨어진 운동화를 고쳐 신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행사장에서 조씨는 ‘500원짜리 양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한쪽 양말을 벗어 보이며 “이게 500원짜리 양말인데, 아무 거나 신고 오다 보니 이렇게 해진 곳을 꿰맨 걸 신고 왔다”며 웃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70대 부부, 75억대 기부 언약 지켰다… 12년 전 황혼에 만나 인연 맺으며 “재산 사회 환원”
입력 2015-11-17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