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원하는 어머니, 기로에 선 가족들… 빌 어거스트 감독의 ‘사일런트 하트’

입력 2015-11-17 19:14

‘정복자 펠레’(1987)와 ‘최선의 의도’(1992)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받은 덴마크 출신 빌 어거스트(67) 감독의 ‘사일런트 하트’(사진)는 죽음에 대한 영화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너무 진지하지 않고 신파적이지도 않다. 거장 감독답게 살아있는 자와 죽어가는 자의 관계를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연출했다.

영화는 두 딸이 부모가 사는 집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머니 에스더(기타 노비)와 마지막 주말을 보내기 위해서다. 이틀 밤이 지나면 루게릭병에 걸린 에스더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몸이 완전히 마비되기 전에 움직일 수 있을 때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의사 출신 아버지 폴(모튼 그런워드)의 처방에 따라 가족이 모두 동의하는 조건이다.

큰딸 하이디(파프리카 스틴)는 엄마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한다. 하지만 작은딸 산느(다니카 크루시크)는 “엄마한테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며 반대한다. 그런 가운데 가족들은 함께 집 주변을 산책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미리 열기도 한다. 마지막 저녁 만찬을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고 웃고 서로 껴안기도 하는 장면은 흐뭇하면서도 애틋하다.

어머니의 죽음 계획에는 아버지의 또 다른 이유가 숨어있다고 판단한 큰딸 때문에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후 스피디하게 결말로 치닫게 된다. 스스로 죽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에스더는 가족들에게 말한다.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알 수가 없어. 언제 신나는 일이 벌어질지 그것만 생각해.”

감독은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무게중심의 한 축은 가족관계라고 강조한다. “죽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누군가는 열정적으로 혹은 도전적으로, 누군가는 열심히 관계 속에서 위로를 얻으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전하고픈 의도는 이것이다.” 그의 전작 ‘리스본행 야간열차’(2013)와 장르는 다르지만 삶에 대한 유머 있는 통찰은 같다. 19일 개봉. 15세 관람가. 98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