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3∼4가 대로변의 조명상가. 전에 볼 수 없던 인체 모양 LED 조형물이 적당한 간격으로 설치돼 낡은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뛰거나 도움닫기를 하는 등 육상선수를 연상시키는 이 조형물은 도심 재생의 의지를 담은 을지로 조명 축제의 메인작품 ‘러닝 투게더’다.
쇠락해가는 을지로 조명상가 재생을 위해 서울디자인재단과 중구청이 뭉쳤다. 을지로 조명산업을 예술과 접목해 활성화시키기 위한 ‘을지로, 라이트웨이 2015’ 축제가 올해 처음 기획된 것이다. 개막일이었던 지난 13일 오후부터 을씨년스럽던 거리는 조명 작품과 구경 온 사람들로 빛의 축제 마당이 됐다.
세운대림상가 양쪽 거리 자체가 전시장이 됐다. 조명디자이너, 조명기업, 대학생들이 참여한 참신하고 실험적인 작품 50점이 곳곳에 걸렸다. 상가 입구 을지로조명협의체 조종진 회장이 운영하는 ‘태평양조명’ 가게에선 ‘라이팅 DJ’를 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음악을 고르면 곡조에 맞춰 색이 바뀐다. 디자이너 정강화 건국대 교수는 색색의 천에 빛을 투사한 ‘빛의 커튼’으로 우중충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대학생들 작품도 기발하다. 폐자재를 이용하거나 계단 하부의 버려진 공간에 설치된 작품(사진)도 있다. 서울시립대 디자인과 학생들은 조명상가의 재료를 활용했다. 빈 맥주병에 꽂으면 즉석 마이크가 되는 조명작품, 양념통을 활용한 조명작품 등이 신선하다.
상인들도 한마음이 돼 축제기간인 21일까지 폐점 시간을 저녁 7시에서 밤 10시로 연장했다. 또 조명 상품에 대해 최대 30% 할인해주는 그랜드 세일에 참여했다. 어묵을 파는 푸드트럭 위에선 퍼포먼스도 벌어져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상인들은 “밤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룬 것은 십여년 만에 처음”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청계상가, 세운대림상가 등을 중심으로 조명가게가 밀집한 이곳은 ‘한국 조명산업의 메카’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저가 중국산이 유입되고 재개발에 묶이면서 점차 활기를 잃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행사를 정례화해 관광자원으로 개발시켜나간다는 계획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民·官·學 “을지로 조명산업 살리자”… ‘빛의 디자인’으로 희망 밝혔다
입력 2015-11-16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