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과정서 소수의견 보여주고 싶었다”… 김영란 前 대법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출간

입력 2015-11-16 20:28

“다수의견만 기억하는 사회에서 소수의견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영란(59·사진) 전 대법관(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창비)를 출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재직 시절 자신이 참여했던 전원합의체 판결 중 10개 사건을 뽑아 왜 이런 판결이 나왔고, 판결 과정에서 어떤 토론이 진행됐으며, 소수의견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알려주는 책이다.

16일 서울 정동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 전 대법관은 “판결에서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라며 “판결문에서 다수의견과 함께 소수의견을 기필코 밝히는 것은 하나의 문제에 대해 시각이 얼마나 다양한 것인지 알려주고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토론의 통로를 열어주는 것인데, 다수의견은 옳고 소수의견은 그르다는 식의 논리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판결에 대해 “현 단계에서 우리의 사회적 합의가 무엇인지 밝혀주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판결은 어떤 문제에 대해 현 단계 우리 사회의 다수의견이 무엇이고 소수의견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며, 다음 단계에서는 사회가 변화해 소수의견의 논리가 널리 받아들여지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책은 ‘김 할머니 사건’을 다루면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 VS 생명을 보호할 의무’ 논쟁을 조명하고,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을 통해 ‘주식회사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문제를 논한다. 또 ‘포털사이트 명예훼손 논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대한 법제가 어떻게 돼 있고 어떤 방향으로 고쳐져야 할까를 생각했다. 이밖에 교육의 공공성과 사립학교의 자율성이 맞부딪힌 ‘상지대 사건’, 종교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는가를 따지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회 통념의 한계를 보여주는 ‘성전환자 성별정정 사건’, 대규모 국책사업의 정당성을 다투는 새만금·천성산·4대강 판결 등도 돌아본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으로서 관여한 전원합의체 판결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을 골라서 비법률가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했다”며 “판결을 쉽게 설명한다는 게 이 책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는 “굉장히 중요한 판결인데도 보통 사람들이 판결문을 읽기는 어렵다”면서 “판결문이 길고 문장이 너무 어려운 데다 그런 판결이 나온 사회적 배경은 설명이 안 되고 사건만 다루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책은 김 전 대법관의 첫 단독 저서다. 이전 저서로는 김두식(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의 대담집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번 책은 한국 대법관 출신이 자신의 재임기간 이뤄진 판결에 대해 쓴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김 전 대법관은 “퇴임하면서 내가 관여한 판결들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며 “책을 쓰면서 돌아보니 좀 더 깊이 생각해서 이런 논리로 다른 대법관들을 설득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출판사 창비는 김 전 대법관의 후속 저서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