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연쇄 테러] 평화·공존 담긴 ‘이매진’ 연주… 거리는 썰렁했지만 넘치는 추모행렬

입력 2015-11-15 22:06
13일(현지시간) 밤 테러가 발생한 파리 11구 샤론가의 카페 벨 에퀴프 앞 도로에 테러 희생자들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이 카페에서는 모두 19명이 무장괴한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AP연합뉴스

하룻밤 사이 129명의 무고한 이들이 숨진 연쇄 테러 이튿날인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는 온통 적막감으로 가득했다. 주말임에도 거리는 한산했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찾는 명소인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디즈니랜드 등은 모두 문을 닫았다. 테러 발생 지점 인근을 비롯해 시내 곳곳에는 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배치됐다고 B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이 전했다.

테러 현장 인근 주민들은 전날 발생한 참사에 대해 도저히 믿기지 않아하는 분위기였다. 연쇄 테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바타클랑 인근 아파트에 사는 브리지트 야시(38·여)는 “모든 사람이 갈가리 찢어져버렸다”고 한탄했다.

거리는 썰렁했지만 추모 행렬은 넘쳐났다. 바타클랑 극장 주변 거리에서는 독일인 음악가 다비드 마르텔로가 존 레넌의 명곡 ‘이매진’을 연주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매진’은 레넌이 1971년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反戰)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발표한 노래다. 마르텔로는 자전거 바퀴가 달린 검은색 그랜드피아노 한 대를 옮겨놓은 뒤 이 곡을 연주했다. 연주를 마친 그는 잠시 눈물을 흘린 듯 얼굴을 훔치고는 현장을 떠났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파리, 당신과 함께합니다”라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함께하자”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추가 테러를 우려해 군중집회를 금지시켰지만 비 내리는 날씨 속에서도 파리 중심가인 공화국 광장에는 100명 이상이 꺼질듯 말 듯한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고 WSJ는 전했다. 출입이 통제된 공연장 주변 건물 앞에는 추모의 꽃다발을 내려놓는 발길도 이어졌다. 머리를 감싸쥐며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 꽃다발 앞에는 ‘더는 이런 일이 없기를’ ‘자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

프랑스인들의 시민정신도 빛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사건 이튿날 파리의 헌혈센터에 테러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려는 시민들이 100m가량 늘어섰다고 보도했다. 저널리스트 앨러나 앤더슨은 자신의 트위터에 “일부 시민들은 헌혈을 위해 3시간까지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부터 사흘간을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이번 테러 배후로 IS를 지목하고 이 사건을 프랑스에 대한 전쟁행위로 규정하면서 ‘테러와의 전쟁’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의사당 주변을 포함해 시내 각지에는 군용 트럭이 배치됐으며 1500여명의 군병력이 파리 시내에 배치됐다.

올랑드 대통령이 테러 직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경 폐쇄를 명령하면서 프랑스와 인접국 간 국경, 공항 등에서는 여행객과 화물에 대한 검색도 재개됐다.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고속열차인 유로스타도 이날 손님 없이 텅 빈 채 운행했다.

프랑스 정부는 아직 테러범이나 공범이 있을 것에 대비해 파리 시민에게 당분간 집에 머물 것을 주문하고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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