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쇠파이프 시위에 물대포 대응… ‘폭력의 악순환’

입력 2015-11-15 22:17 수정 2015-11-16 00:07
서울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14일 한 시민이 눈에 최루액이 들어가 괴로워하는 의경의 얼굴에 생수를 부어 씻겨주고 있다. 누군가가 찍은 이 사진은 15일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퍼지며 화제를 모았다. 트위터 캡처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열린 14일 서울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앞 경찰버스의 주유구에 불이 붙은 신문지가 꽂혀 있다. 누군가 신문지를 꽂고 불을 붙인 뒤 사라졌으나 신문지가 곧 땅에 떨어져 버스에 옮겨 붙지는 않았다. 페이스북 등에 이 사진이 올라온 뒤 경찰은 “시위대가 심지어 경찰버스 주유구에 방화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캡처
가톨릭농민회 백남기씨가 14일 서울 종로1가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도로에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시위 참가자가 백씨 몸 위에 쭈그려 앉아 물대포를 대신 맞으며 백씨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백씨는 서울대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연합뉴스
폭력시위와 과잉진압의 ‘악순환’이 다시 되풀이됐다.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열린 14일 서울 도심에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최대 인원이 모였다. 시위대는 쇠파이프로 경찰차 유리창을 깨고 경찰버스 주유구에 불을 붙이는 등 폭력을 동원했다. 경찰은 최루액(캡사이신) 물대포를 시위대에 ‘직사(直射)’하며 대응했다. 머리에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60대 노인은 뇌출혈을 일으켜 위독하다.

시위대와 경찰에서 많은 부상자가 나왔고, 서울은 아수라장이 됐다. 2008년 이후 최대 규모의 도심 집회. 시위문화와 경찰 대응은 7년 전보다 한 뼘도 나아지지 않았다.



위험천만한 폭력

서울광장 등 서울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열린 사전 집회에 참석한 13만명(경찰 추산 7만여명)은 이날 오후 4시30분쯤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행사를 주도한 민주노총 등 53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는 사전에 ‘청와대 행진’ 의사를 밝혔었다. 경찰은 병력 2만2000명과 경찰버스 700여대, 차벽트럭 20대 등을 동원해 청와대 진입로를 모두 봉쇄했다.

발이 묶인 시위대는 폭력적으로 변했다. 일부는 차벽버스의 바퀴 등을 밧줄로 묶고 끌어내려고 했다. 접이식 사다리와 각목도 등장했다. 깃대 등으로 경찰을 위협하고, 쇠파이프로 경찰차를 내리치기도 했다. 종로구청 사거리 근방에서는 한 참가자가 보도블록을 들어 땅에 내려친 후 생긴 파편을 경찰과 경찰버스 등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앞에선 한 시위대가 신문지에 불을 붙여 경찰버스 주유구에 집어넣으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이 붙은 신문지가 주유구 밖으로 떨어져 방화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오후 8시 넘어서는 시위대 일부가 횃불을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시위현장에서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을 둘러싼 추격전도 벌어졌다. 한 위원장은 오후 1시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정부의 노동개혁을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틈을 노려 경찰은 검거를 시도하며 민주노총 측과 몸싸움을 벌였다.

김현웅 법무장관은 15일 담화문을 내고 불법 시위를 주도하거나 배후 조종한 자, 극렬 폭력행위자를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일부 시위대는 쇠파이프 등 불법 시위용품을 미리 준비하고 폭력시위에 돌입했다. 옛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반대하는 주장과 자유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 했던 주범인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51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연행했다. 이 중 고등학생 2명을 제외한 49명이 입건됐다. 연행된 대학생 중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딸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출혈 부른 물대포

경찰은 오후 5시쯤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하자 차벽 위에서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에 따르면 14일 오후 6시56분쯤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 인근에서 가톨릭농민회 소속 백남기(68)씨가 경찰 물대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다. 투쟁본부 측은 경찰이 정조준해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백씨는 머리를 숙이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물대포는 계속 그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1m가량 뒤로 밀린 백씨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4시간여에 걸쳐 뇌출혈 수술을 받은 백씨는 현재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백씨를 포함해 29명의 시위대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경찰 살수차는 군중해산 목적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물줄기에 직격당해 넘어지거나 의식을 잃으면 즉시 살수를 중단해야 한다”며 “처음 피해자를 쏴 넘어뜨린 건 ‘업무상 과실에 의한 상해’라고 해도 넘어진 피해자와 그를 구조하려는 시민들에게 살수를 계속한 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미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경고방송이 없었던 점 등을 감안해 형사고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할 계획이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측은 다음 달 5일에 2차 투쟁을 예고했다.

반면 경찰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주장했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차벽을 훼손하려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살수차 운용 등은 과잉진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대포 사용 기준 논란

경찰청 훈령에는 살수차 운용지침이 있다. 지침은 물대포 분산살수 때 발사각을 45도 이상 유지하고, 직사살수(시위대를 향해 직선 발사) 땐 가슴 아래를 겨냥토록 하고 있다. 시위대와의 거리에 따라 살수 강도를 조절하는 등의 안전 규정도 있다. 집회 주최 측은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2∼3m 뒤로 밀려 넘어질 만큼 물줄기가 강했다고 주장한다.

물대포는 2008년 광우병 시위 때도 등장해 많은 부상자를 낳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과 2012년 물대포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경찰에 권고했다. 경찰은 법률로 세세한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물대포 부상에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단독 전연숙 판사는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위 중 물대포에 고막을 다친 박희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 등 2명이 낸 소송에서 “국가가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지난해 판결했었다. 전 판사는 경찰이 구체적 사유를 알리지 않고 해산방송만 한 뒤 10분 만에 물대포를 발사한 건 과잉진압이었다고 봤다. 다만 직사살수 자체가 과잉진압이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씨 등은 물대포 사용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도 냈다. 헌법재판소는 판단 대상이 아니라며 6대 3 의견으로 각하했다. 그러나 소수의견 재판관들은 “물대포 사용 근거를 법으로 규정하지 않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위헌”이라며 “직사살수는 발사자의 의도이든 실수이든 생명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세환 나성원 강창욱 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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