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연쇄 테러] IS의 ‘망상’… 전세계 무차별 공격으로 ‘전환’

입력 2015-11-15 22:36
연쇄 테러가 발생한 프랑스 파리의 한 레스토랑 창문에 14일(현지시간) 총알이 관통한 구멍 사이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라는 문구가 적힌 메모지와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미가 꽂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등 세계 주요국 정부가 파리 테러 사건에 긴장하는 것은 잔혹한 수법과 막대한 사상자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이라크에서 칼리파(이슬람 종교지도자)가 지배하는 국가를 건설한다는 당초 목표 대신 서방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로 초점을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점 때문이다.

◇전 세계 테러로 방향 전환=저명한 과격 이슬람주의 전문가인 윌리엄 매캔츠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만약 이번 사건이 IS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실행된 게 맞는다면 이는 중요한 변화를 시사한다”면서 “기존의 ‘칼리파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 대신 그들의 확장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징벌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국방·안보 싱크탱크인 전략조사재단(FRS)의 카밀 그랜드 소장도 “최근 수세에 처해 있던 IS가 이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수단인 테러 활동으로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사람들이 계속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최근 2주일 새 IS가 아프리카, 아시아(중동), 유럽 3개 대륙에서 잇달아 터진 대규모 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한 데 주목한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전대미문의 ‘범대륙 연쇄 테러’를 저지른 셈이다. IS 이집트 지부는 지난달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 러시아 항공사 소속 여객기를 자신들이 추락시켰다고 밝혔다. 여객기 추락으로 탑승자 224명 전원이 숨졌다. 1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서는 자살폭탄 테러 2건이 연속으로 일어나 43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다. IS는 이 테러도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다. 베이루트 테러 이튿날인 13일 밤엔 지중해를 건너 파리 도심에서 연쇄 총기 난사와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129명이 죽고 350여명이 부상했다.

◇정책 수정 불가피···“봉쇄 대신 격멸”=1년여 동안 미국 주도로 서방국들이 IS에 대한 공습을 지속해 왔지만 어느 정도는 중동 지역에 한정된 문제로 간주해 온 것이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IS에 대한 공습뿐 아니라 소규모 특수부대도 파견했지만 ‘지상군 파견 불가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 왔다.

이번 연쇄 테러로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은 더욱 난감하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건 발생 불과 12시간 전 미 ABC 방송 인터뷰에서 IS 지도부를 무력화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IS 봉쇄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평해 논란이 일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구체적인 테러 대응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IS 격퇴를 위한 지상군 투입 등 전략 수정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테러리즘 수석보좌관이었던 프랜시스 프라고스 타운센드 등 전문가들은 “IS의 위협이 중동을 넘어 미국으로 이어져 파리와 같은 테러가 미국 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미국 정부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IS와의 정면 대결은 지난달 말 폭탄 테러로 러시아 민항기가 추락한 데서 볼 수 있듯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 미국이 지상군 파견이라는 카드를 쓸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얘기다. 하지만 더욱 엄격한 국경 통제, 미국 내 감시·통제 강화, 정보기관 간 더욱 긴밀한 정보교환 등이 시행될 것은 확실하다.

전 백악관 대테러 보좌관인 후안 카를로스 자라테는 “세 대륙에서 벌어진 IS의 테러로 미국과 우방들은 지금은 IS를 봉쇄할 게 아니라 이 테러그룹의 근원을 파괴하기 위해 훨씬 더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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