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극복하는 교회들] ⑪ ‘노인사역 모범’ 경남 함양교회 경로대학 르포

입력 2015-11-15 20:30
경남 함양군 함양교회에서 운영하는 경로대학의 노인들이 지난 4일 교회 도서관에서 흰 도화지에 그려진 단풍잎에 색칠을 하고 있다.
노인들이 전문 체조강사를 따라 체조하는 모습.
지난 4일 오전 경남 함양군 함양교회(이창희 목사) 도서관. 이정순(78) 할머니는 흰 도화지에 밑그림으로 그려진 단풍잎에 빨간 크레파스로 색을 입혔다. 온통 빨간색으로만 칠하자 그리기반 담당교사인 권미선 권사가 말했다.

“왜 똑같은 색으로만 칠하세요?”

“한 나무에서 나온 잎이니까 당연히 한 색깔로 칠해야 하는 거 아녀?”

“그래도 다양한 색깔로 칠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함양교회가 운영하는 경로대학의 모습이다. 함양경로대학은 매주 수요일 문을 연다. 이날도 ‘도우미 할아버지’들은 오전 8시30분부터 버스로 마을 노인들을 모셔왔다. 교회에서 20㎞ 정도 떨어진 안의면행(行) 24인승 버스를 마지막으로 5대의 버스가 모두 도착했다. 빗자루로 마당을 쓸던 이창희 목사가 말했다. “버스 한 대로 여러 마을을 돌면 처음에 탄 할머니가 힘들어하시기 때문에 버스 여러 대로 ‘교회-마을’을 직통 운행합니다. 직접 승합차를 구입해서 차량 봉사를 하시는 도우미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오전 9시30분. 100여명의 경로대학 학생들은 교육관에 모여 함양체육회 소속 강사인 김혜은씨를 따라 체조를 했다. 박수를 치거나 허리를 쭉 펴는 동작이 많았다.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가 나오자 할머니들은 소녀처럼 밝게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송점순(90) 할머니는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제대로 따라하기 힘들지만 경로대학에 나와 다른 할머니들이랑 어울리다 보면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이 체조를 하는 동안 이 목사와 교사들은 본당에서 모임을 가졌다. 기도를 마친 이 목사가 교사들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사랑으로 노인들을 대해주세요. 그러면 말을 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사랑이 그분들 가슴속에 닿을 겁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어르신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고 구원으로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함양경로대학에선 매주 특강을 한다. 주로 ‘천국’이나 ‘구원’에 관한 강의가 많다. 이날 강사로 나선 행함지리산수양관 김창성 목사는 “노인학교에서 열심히 하나님 말씀 듣고 구원열차를 타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여기저기서 “아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의 후에는 성경공부가 이어졌다. 교회가 운영하는 경로대학이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노인들도 많다. 교사들은 지루함을 덜기 위해 성경공부 틈틈이 ‘양파농사는 잘되고 있는지’ ‘자녀들은 언제 왔다갔는지’ ‘건강은 어떤지’ 등을 물었다.

오전 11시30분이 되면 특별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기·만들기·한글·영어·댄스반 등이 있다. 그리기반 김영주(83) 할머니는 함양경로대학에 다닌 지 올해로 10년째다. 수십년간 절에 다니다가 2011년 하나님을 영접하고 ‘집사님’이 됐다. 이후 동네 할머니들도 여러 명 전도했다고 한다. “내가 경로대학에서 배운 게 많아. 죽으면 하나님 계신 천국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남은 생애 동안 열심히 전도해야지.” 이때 잠시 들른 이 목사가 김 할머니의 그림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할머니, 화가해도 되겠네(웃음).”

점심시간이 되자 ‘도우미 할아버지’들이 다시 투입됐다. 은퇴 장로나 안수집사 등으로 구성됐다. 백발에 주름도 깊게 파여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모자랄 것 같은 할아버지들이 본당에 테이블과 방석을 깔았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대신해 식판에 음식을 받던 ‘도우미’ 백길영(75) 할아버지가 말했다.

“목사님이 복음 전파하려고 경로대학 운영하면서 고생하는데 이렇게라도 도와야지. 이 나이 먹고도 남을 도울 수 있으면 나름 잘 살고 있는 거 아녀. 나이 많다고 무시하지 마슈. 아직 우리 젊다우(웃음).”

함양=글·사진 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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