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분노, 삶에 활력소 될 수도…

입력 2015-11-16 19:02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정선용 교수가 스트레스 해소 및 화기(火氣) 진정에 도움이 된다는 대추차를 시음하고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화는 불과 같아서 잘못 다루면 매우 위험한 감정이다. 어떤 상황에 불공평하다고 느끼거나 자기 것을 침범당해 위험하다고 느낄 때 화가 난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거나 조금 언짢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심하게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화가 나더라도 감정 조절을 잘하며 적절히 대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폭력적 언행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 반응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오하이오 애크런대 사회복지학과 상진아 교수는 저서 ‘감정에 지지 않는 법’(센추리원)에서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숨어있는 억압능력 때문”이라는 답을 내놨다.

분노를 표출하는 정도를 ‘전혀 화를 내지 않는’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살인이라도 저지를’ 정도까지 강도에 따라 0∼10점의 수치로 가늠해 보자.

어떤 때는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소리를 지르는 4∼5점 단계의 화를 내지만 어떤 때는 물건을 집어던지는 7∼8점, 서로 치고 받고 몸싸움을 벌이는 8∼9점 단계의 화를 내는 등 때와 장소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집에서 가족과 있을 때, 특히 엄마 앞에서는 화를 참지 않고 터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직장 상사나 시부모 앞에서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속으로 꾹 참고 태연하게 행동한다. 누구나 행동을 자제하는 자기조절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상 교수는 이런 능력을 자동차 브레이크에 비유했다. 브레이크는 달리던 자동차가가 위험할 때 멈출 수 있도록 제어할 뿐만 아니라 적당한 속도로 안전운행을 하도록 도와준다. 마찬가지로 억압능력 역시 화가 날 때 극단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도록 제어하면서 평소처럼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게 한다.

억압능력에는 내부억압과 외부억압 두 종류가 있다. 내부억압은 학습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억압기제를 말한다. ‘어르신들 앞에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내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화가 난다고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화를 내봤자 나한테 이로울 게 없다’ 등과 같은 속생각이 화를 참는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외부억압은 말 그대로 외부의 억압기제가 발동하는 경우다. 화를 참지 못했을 때 생기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화를 참는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작장 상사 앞에서 화를 참는 것은 적절치 못한 말이나 행동을 할 경우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는 생각과 행동, 신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선 화가 나면 정신이 온통 화가 난 근본 원인에만 집중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화를 느낀 순간을 계속 머릿속으로 반복 재생한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이나 행동을 홧김에 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소리가 커지고 공격적인 언어를 쓰고 판단력을 상실해 심할 경우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화가 났을 때 공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강하게 나가야 상대방이 자신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화가 났을 때의 공격성은 강함보다는 되레 약함을 뜻한다.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기선완 교수는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말하고 행동할 경우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가 나면 몸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긴다. 일단 심장박동 수가 급격히 올라가며 가슴이 마구 뛴다. 얼굴에는 열이 올라 화끈거리며 호흡이 가빠진다. 이런 신체 변화는 위험이 감지될 때 이차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혈압도 이때 올라간다. 머리에서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를 띄워 분노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을 분비시킨다. 분노를 적절히 다스리지 않으면 화병이 생겨 건강을 해치게 되는 이유다.<별표 참조>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정선용 교수는 “적절한 분노는 우리의 자아를 보호하는데도 꼭 필요하다”며 “화는 자칫 위험하고 불편한 감정이지만 조심스럽게 잘 다루면 삶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