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은 대학에 보결생으로 입학했다는 열등감으로 시작한 대학생활은 영 재미가 없었다. 당시 한국사회복지대학 대구 대명동 캠퍼스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광명학교, 지체장애인을 위한 보건학교, 농아인을 위한 영화학교,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보명학교가 함께 있었다.
운동회도 이 4개 학교가 모여서 하곤 했는데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소리가 나는 축구공을 차며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
첫 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6월 초순으로 기억된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는 아침마다 운동장에 나와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런데 이날은 정신지체·농아·뇌성마비·시각장애 이렇게 4명의 학생이 운동장 가장자리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도 운동장을 몇 바퀴 돈 뒤 그들 옆에 다가가 앉았다. 마침 옆에 큰 막대기가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해 아이들은 어떤 소원이 있는지 막대로 배를 툭툭 치면서 추궁하듯 묻기 시작했다.
“야, 너희들 지금 가장 갖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봐라.”
장난삼아 말을 거는 내게 정신지체 학생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농아 학생은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했다. 뇌성마비 학생은 한라산 등반을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난 호기롭게 내가 기회가 되면 너희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 학생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야, 넌 소원이 뭐냐. 이야기 해봐.”
눈이 일그러져 감겨 있는 상태의 그 학생은 다소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
“들어줄 수도 없는데 말하면 뭐해요.”
난 더 궁금해졌다. 자꾸 학생에게 말해보라며 여러 번 재촉을 하자 그는 정말 간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요. 정말 딱 한 번만이라도 눈을 떠서 이 세상을 보는 거예요. 5분 아니 1분만이라도 궁금한 세상을 봤으면 좋겠어요.”
이 학생의 말은 갑자기 망치로 내 머리를 한 대 치는 듯한 강한 충격과 전율로 다가왔다. 손에 든 막대기가 너무나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놓아버렸다.
“나는 멀쩡한 몸에 좋은 부모 만나 어려움 없이 살아가면서도 당장 시원찮은 대학에 왔다고 툴툴거리며 만족을 못하고 있는데 이 학생은 평생소원이 잠깐이라도 세상을 보는 것이라지 않는가. 나는 눈 뜨고 살면서도 감사할 줄도 모르고 이렇게 장애인이나 놀리고 있다니.”
너무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기숙사에 돌아와 나를 자책하는데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펑펑 쏟아질 정도였다. 순간 내 어린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내가 한사대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실 재수 후 또 1, 2차까지 대학 입시에 낙방했을 때 자살을 결심하고 수면제 20알은 먹었던 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구토가 나와 목숨을 건진 사건이 있었다. 이때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시고 이곳으로 인도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동시에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 박은순 권사(경남가술교회)는 일생을 저녁 10시만 되면 어김없이 교회에 올라가 엎드려 철야하시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와 또 예배와 기도로 하루를 사신 분이셨다. 어머니의 기도로 내가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내왔고 죽음의 위기에서도 살아났으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날부터 내 삶은 180도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앙인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을 가슴으로 만나지 못했던 나는 이날의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뜨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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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16 19:04 수정 2015-11-16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