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유호열] 북핵 이후 이행체제 정비해야

입력 2015-11-15 18:15 수정 2015-11-15 18:23

주말에 베이징에서 ‘한반도 통일문제와 한·중 관계’를 주제로 열린 공동학술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회의 참석자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에 있어 우리의 주도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졌음에 공감하지만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적 통일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경제 병진노선의 지속 여부와 한·미동맹의 미래에 달려 있다는 데 공감했다.

지난 8·25합의에 따라 남북한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이산가족 상봉 및 민간교류를 시범적으로 실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고위 당국 간 회담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기존의 장관급 고위회담이 될지, 8·25합의를 도출한 2+2 형식의 회담이 될지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이를 논의할 실무접촉에도 응하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대한 억측이 난무한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 북한은 중국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 상무위원의 방북을 부각시키고, 노동당 7차 당대회를 내년 5월에 개최할 것을 공표하는 등 김정은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중 관계의 개선과 김정은 체제 공고화의 관건이 결국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의 수정 여부라고 한다면 최근 일련의 움직임에는 북·중 간 북핵 문제와 관련한 깊은 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대북정책의 목표와 기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전, 비핵화인데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핵 폐기는 핵심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중국 고위 인사의 방북과 김정은의 환대는 사실상 최고위급의 관계 개선의 전조로 해석해도 무방하며, 이를 가능하게 한 조건은 역시 중국의 북한 비핵화 요구와 북한의 정책 변화 시사가 접점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노동당 7차 당대회를 36년 만에 개최하기로 방침을 세운 데에도 중국의 대규모 지원 약속이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김정은 시대를 출범시킨 2013년 4월 4차 당대표자대회를 개최했던 북한이 굳이 이 시점에서 당대회를 개최하는 데에는 중장기 경제개발계획을 발표함으로써 김정은 체제를 안착시키려는 구상이 깔려 있으며 여기에는 결국 중국의 안정적인 대규모 경제지원 약속과 이러한 약속을 가능케 한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의 폐기 시사와 무관할 수 없다. 따라서 류윈산 상무위원의 최근 발언 전언에도 불구하고 내년 상반기 김정은 제1비서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핵·경제 병진노선의 폐기를 공식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준비와 함께 북·중 관계 개선에 따라 북·미 관계 변화와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본격화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체제차원에서 접근하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헌법에 명시할 정도로 격상시켜놓고 있다. 핵 포기 의사를 표명하는 순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관계개선 및 평화협정 체결 등 북한의 요구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다. 한·미 간에 포괄적인 전략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6자회담에 복귀할 경우에 대비해 이미 구성되어 있는 5개 워킹그룹의 동시 가동을 염두에 두고 우리 측 이행체제를 점검하고 보강해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순간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6자 틀 속에서의 효과적인 대북 대가성 경제지원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경험을 볼 때 남북교류협력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안보전략적 측면과 다국 간 협력체제를 염두에 두고 우리 내부의 독자적 예산 체계와 행정 제도 수립 등 보완책을 마련해 둬야 할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