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장지영] 검열과 문화융성

입력 2015-11-15 18:11

올해 연극계가 배출한 걸작 중 하나는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7일까지 공연된 ‘비포 애프터’다. 연출가 이경성이 이끄는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가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세월호의 아픔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통찰력 있게 접근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그런데, 이 작품이 민간 극장이 아닌 공공 극장에서였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공연될 수 있었을까. 비슷한 시기인 10월 17∼18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 대학로예술극장 카페에서 공연된 연극 ‘이 아이’가 세월호를 상기시킨다는 이유로 극장 관계자들의 방해를 받은 사건을 떠올려볼 때 절대로 공연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 문화예술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검열 때문에 시끄럽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논란이 된 사례만 봐도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 영화 ‘다이빙 벨’ 상영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 의혹과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을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지원 사업에서 연출가 박근형의 배제 등 20여건이나 된다.

검열이 일상화되면서 예술가나 예술단체들의 ‘알아서 기는’ 자기검열도 심각해지고 있다. 예술이란 장르의 특성상 공공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나 사회에 비판적인 작품을 스스로 꺼리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극 ‘비포 애프터’를 칭찬하는 동시에 이경성이 당분간 공공 지원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미 예술가들 사이에 ‘감시의 내면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공으로 운영되는 예술기관 역시 예술가를 대변하기보다는 조직 안정을 위해 앞장서서 검열을 자행하게 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현 정부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가 문화융성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없다고 울부짖는 지금 문화융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장지영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