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극복하는 교회들] ⑪ 함양교회 경로대학 노인사역 성공 비결

입력 2015-11-15 19:16 수정 2015-11-15 20:33
지난 6월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함양교회 경로대학 교사와 학생들이 다낭의 해변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함양교회 제공
한국교회가 노인사역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40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3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등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지부진한 노인사역을 더 이상 보고만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 농어촌에선 아이들과 중장년층이 사라지고 노인들만 남아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경남 함양의 함양교회(이창희 목사·사진)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경로대학 운영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노인사역을 하고 있다.

◇주일학교 같은 노인학교=함양교회 경로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노인을 노인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양경로대학은 매년 여름캠프를 개최한다.

지난 7월엔 할머니 70여명과 함께 충남 태안 천리포해수욕장에 다녀왔다. 캠프 프로그램을 보면 주일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캠프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올해 캠프에선 해변가요제 마술쇼 보물찾기 장기자랑 등을 진행했다. 고령이라 암기에 서툴 수 있지만 성경구절을 외운 뒤 식사를 하도록 했다. 동적(動的)인 프로그램이 많은 만큼 앰뷸런스 대기는 필수다. 캠프수칙 1번이 ‘나이 많다고 노인처럼 행동하면 곤란하다’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노인학교 모습이 아니다.

지난 4일 만난 이창희 목사는 경로대학을 이렇게 운영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르신들은 연로하시기 때문에 정적(靜的)인 활동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 그렇진 않아요. 어르신들 중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학창시절에 대한 아쉬움이나 향수가 깊은 분들이 많아요. 어르신들을 멀리 모시고 나가면 힘들어하실 것 같지만 막상 가보면 소녀들이 수학여행 온 것처럼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시며 즐거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해외여행도 자주 간다. 2011년 중국, 2012년 태국, 지난해에는 필리핀에 다녀왔다. 올해는 지난 6월 할머니 25명을 모시고 베트남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함양경로대학은 여름캠프나 해외여행, 봄 소풍, 졸업식 등 행사를 할 때마다 회비를 걷는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경로대학은 전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무료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함양경로대학은 그렇지 않다. 이 학교 어르신들은 매달 회비 3000원을 내고, 여름캠프 때는 3만원 정도를 낸다. “노인들이 자신을 위해 돈 쓸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게 이 목사의 지론이다.

“할머니들은 한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사셨잖아요. 땅 팔고 소 팔아서 자식 공부시키는 동안 정작 본인을 위해선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돈 쓰는 법을 잘 모르세요. 회비를 내면 노인학교에 대한 소속감도 높아지고 애착도 커집니다.”

◇핵심은 ‘죽음과 천국’=이 목사가 함양교회에 부임한 2009년 80명가량이었던 함양경로대학 학생은 현재 150명 정도까지 늘었다. 노인사역에 관심이 많은 다른 교회 목회자들도 함양경로대학에서 성공적인 노인사역의 힌트를 찾으려 한다. 최근엔 경북 경주 구정교회에서 이 목사를 초청해 노인사역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 목사는 “교회가 경로대학을 운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복음을 뺀 채’ 어르신을 섬기기만 하는 경로대학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함양경로대학은 매주 경로대학을 열 때마다 성경공부를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에서 발간한 노인대상 공과교재를 사용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르신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교회가 ‘복음’을 빼놓고 노인학교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교회가 노인학교를 운영하는 목적은 선교라는 걸 잊어선 안돼요. 노인학교는 항상 하나님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복음’을 강조하면서도 어르신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이들의 관심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목사가 내린 결론은 ‘죽음’과 ‘천국’이다. 이 목사는 부임 이후 노인학교 학생 45명이 숨지는 것을 지켜봤다.

2013년 여름캠프 때는 죽음을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몇몇 할머니가 실제로 관에 들어가고 나머지 할머니는 유가족 역할을 했다. 교사가 직접 작성한 조사(弔詞)를 읽을 때는 온통 눈물바다로 변했다고 한다. 숨을 쉴 수 있도록 관에 구멍을 뚫어놓는 것만 빼면 모든 게 실제 장례와 똑같다.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할머니들에게 ‘천국’에 대한 절실함이 생긴다고 한다.

함양경로대학은 매주 진행하는 특강의 주제를 선정할 때도 특별한 기준이 있다. 노인들이 실제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건 노후대책이 없는 빈고(貧苦), 병치레로 힘들어하는 병고(病苦), 혼자 살다 갑자기 죽음을 맞는 고독사(孤獨死)”라며 “이를 염두에 두고 강사를 섭외해야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함양=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