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전화번호를 잃어버렸어.” “추운데 외투 챙기는 걸 잃어버렸네.” 모두 ‘잊은’ 거지 ‘잃은’ 게 아닙니다. ‘잊다’와 ‘잃다’. 얕보이지만 일상에서 흔히 잘못 쓰는 말입니다.
‘잊다’는 ‘알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 고통, 좋지 않은 지난 일을 마음속에 두지 않다’ ‘본분, 은혜 따위를 저버리다’ 등의 뜻이 있지요.
‘잃다’는 ‘가졌던 물건이 없어져 갖지 않게 되다’ ‘땅이나 자리가 없어져 갖지 못하게 되거나 거기에서 살지 못하게 되다’, 그리고 ‘입맛을 잃다’ ‘노름에서 돈을 잃다’처럼 쓰입니다.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역사적 ‘과오’라 할 수 있겠는데, 글피(17일)는 110년 전 일제가 고종을 협박하고 매국노들을 매수해 ‘을사조약’이라는 걸 맺은 날입니다. 강제됐기 때문에 ‘늑약(勒約)’이라고 하지요. 가죽채찍(革)을 힘주어 쥔(力) 륵(勒)자가 말해줍니다.
‘역사’ 문제로 말이 많은데, 의도적으로 부끄럽다고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면 그건 이미 역사가 아니지요. 역사는 ‘포장’하는 게 아닙니다.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거기서 배우지 못하면 내일을 잃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잃다’는 없어지다… ‘잊다’는 기억 못하다
입력 2015-11-13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