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근] 보건의료시장 선점하려면

입력 2015-11-13 18:16

6·25전쟁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의 원조 대상이었던 우리나라는 1960∼80년대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발 정책으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경제구조의 글로벌화, 지식 정보화 및 인구 고령화 등으로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도 의료의 트렌드가 IT·BT·빅데이터·서비스 개념과 접목하면서 질병 치료만 하던 역할에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증진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로 진화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2009년 우리나라 의료법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의 높은 의료수준을 입소문으로 듣고 삼삼오오 한국 병원을 찾던 외국인들에 대해 의료기관들이 적극적으로 환자 유치를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 활동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외국인 환자 진료는 2009년 6만여명을 시작으로 연평균 34.7%의 증가 속에 지난해 26만6000여명으로 역대 최고의 외국인 환자 진료 실적을 거두었다. 국내 병원들의 해외 진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중점 국정과제로 선정돼 2010년 58건의 프로젝트가 해외에 진출한 이후 연평균 약 21%의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해엔 19개국에 125건의 프로젝트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병원들의 적극적인 해외 홍보 마케팅, 친외국인 진료 인프라 구축 노력과 함께 장기체류·면허 인정 및 금융조달 등의 애로사항을 해소해주려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의료의 높아진 위상을 발판으로 더 큰 도약대를 만들어야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이대로 가다간 한국 의료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기는커녕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세계 헬스케어 시장은 약 8000조원(2012년 기준) 규모로 매년 9% 이상 성장하며 세계 자동차산업(1804조원)의 4배를 상회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ICT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을 공략 중인 것에 비해 헬스케어산업의 세계 시장 공략은 아직 초기 단계다. 지난 6년간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하며 느꼈던 국내 병원의 애로사항들을 해소한다면 국제 의료사업의 경쟁력은 2017년까지 6조원의 부가가치와 약 1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의료계 노력에 부응이라도 한 듯 정치권 역시 이를 지원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일부에서 제기하는 의료의 공공성 침해 우려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는 법적으로 강한 보호막을 지닌 가장 효율적인 의료공급체제이며, 모든 의료인은 국민건강 수호를 최우선 사명으로 의업에 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공공성은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을 통해 이미 확보된 대명제이다. 국제 의료사업을 지원하는 보건산업 측면에서의 의료 발전과 의료의 공공성 강화는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 의료사업이 활성화되어 국부를 창출하면 합리적 비용으로 국내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의료를 제공함으로써 의료 공공성이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국제 의료사업은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당연히 확대되어야 한다. 부디 정치적 논쟁으로 우리 후손들의 먹거리인 보건의료 시장 선점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상근 대한병원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