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할아버지는 식사 중에 말을 못하게 하셨다. 가급적 빨리 먹고 일어서는 게 좋다고도 하셨다. 그것이 식사예절의 기본이란 가르침에 모두가 따라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웃고 즐기며 1시간 넘게 식사한다는데요”라고 해도 “그건 그 나라 사람들 얘기지”라고 반박하시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과 동시에 ‘반기’를 들었다. 독자적인 가정을 꾸리면서 밥을 천천히 먹으며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건강과 소통에 좋다는 평소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어릴 적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밥 먹는 속도는 빠른 편이지만 과일과 커피 등을 내놓고 아내, 자녀들과 대화하는 걸 즐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데 어린이들이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겨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으면 가정이 아니라 호텔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의 가장 좋은 이미지는 저녁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함께하며 하루의 경험을 서로 얘기하는 것”이라며 “식탁에서 대화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진정한 가족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가정에서 식사할 때만큼은 반드시 TV를 끄도록 조언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마트폰까지 문제삼은 것이다.
실제로 요즘 스마트폰은 밥상머리 대화 방해자다. 모 제약회사가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우리나라 직장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식사 중 대화시간’을 조사해봤더니 52.8%가 10분 미만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8.2%는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응답자의 40.9%는 스마트폰 사용 이후 대화시간이 짧아졌으며, 33%는 스마트폰 때문에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답이 나왔다.
가족은 사전적 의미로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식구(食口)의 동의어다. 가족이라면 마땅히 식사를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밥상머리 대화가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된다거나 사랑과 신뢰감을 증진하는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다. 스마트폰이 이를 방해한다니 식탁에서만큼은 지금 당장 추방해야겠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밥상머리 대화 방해자
입력 2015-11-13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