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앞에 여야는 또 눈을 질끈 감았다. 스스로 만든 법을 위반하는 악습을 반복했다는 비판도 개의치 않았다. 한쪽만 욕먹는 게 아니라면 표 떨어질 일이 없다는 식이다.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안도 ‘지각 꼼수 합의’ 수준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야가 기득권 지키기에 열중하는 사이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심화되고 있다.
선거구 획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법정 시한을 하루 앞둔 12일 여야는 당대표,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가 참여한 ‘4+4 회동’을 사흘째 이어갔지만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여야는 오후 두 번째 회동 시작 10분 만에 협상 결렬을 선언, 법정 시한 내 처리는 결국 무산됐다.
결렬 선언 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사흘 동안 연일 (협상을) 했었는데 결론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국민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쟁점인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전체 지역구 수 증가가 불가피한 만큼 비례대표 의원 수를 줄이자는 새누리당과 비례대표 수 축소에 반대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국회 밖에선 현역 의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선거구 획정을 늦추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실제 여야는 결렬 선언 전부터 법정 시한을 지키지 못한다는 가정 하에 움직였다. 여야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15일까지인 국회 정치개혁특위 활동 기한을 다음 달 14일까지로 연장하는 안을 처리했다. 새누리당은 또 획정안 처리 시한을 넘길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의 의결 요건을 현재 3분의 2에서 과반으로 완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의정보고 등을 통해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현역 의원들과 달리 합법적인 선거운동이 불가능한 정치 신인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선거구 획정 논의의 마지노선을 헌재가 정한 올해 말까지로 보고 있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2000년 16대부터 19대 총선까지 모두 선거일을 1∼2개월 코앞에 두고 선거구 획정안이 처리되는 전례가 이번에도 되풀이될 수 있어서다.
특히 과거와 달리 올해는 헌재 결정에 따라 해를 넘기면 현행 선거구 구역표 전체가 무효화돼 행정상으로도 큰 차질이 생긴다. 12월 15일 이후 예비후보에 등록한 자는 연말까지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해를 넘기면 선거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선거운동을 중단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치 신인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원천 봉쇄되는 것이다.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박명호 교수는 “선거구 획정 때마다 시한을 넘긴 것은 기득권 구조를 지키기 위한 여야의 담합 때문”이라며 “선거구 획정에 있어 우선 원칙은 시한을 지키는 게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장희 권지혜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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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12 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