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전남 여수 앞바다에 있는 개도 월항교회에 도착하자 성도들이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주민 50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개도는 여수 백야선착장에서 배로 20여분 거리에 있다.
성도들은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교회 앞에 추수한 쌀을 비롯해 호박 고구마 모과 무 감 유자 볼락 전어 문어 등 농수산물을 잔뜩 쌓아놓았다. 한 해 동안 정성껏 수확한 농작물과 물고기들이다.
이 교회 김본암(63) 장로가 이른 아침에 잡은 문어를 손에 들고 “그놈, 참 잘 생겼네”라고 자랑을 하자 찬양 인도를 하는 이강엽(68) 권사는 “우리 집에서 재배한 고구마가 제일 토실토실하고 크고 잘생긴 것 같아”라며 맞장구를 쳤다.
성도들은 올 한 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하나둘 털어놨다. 성도들의 감사함에는 추수의 기쁨만 있지는 않았다. 91세 장가심 할머니는 “건강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면서 “주일예배 때마다 일찍 교회에 도착해 기도드린다”고 고백했다.
김월례(87) 집사는 목사님 말씀을 듣고 싶어 주일이 제일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교회생활 3년째인 정인혜(86) 성도는 “올해는 집에 불이 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교인들이 도와줘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금석(74) 집사는 “암에 걸려 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지만 하나님을 굳게 의지했다”면서 “이제 항암치료를 두 번만 더 받으면 된다.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고마워했다.
이 교회 김종수(67) 담임목사는 숨겨왔던 더 큰 감사의 사연을 밝혔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신학을 공부하게 하시고 목사안수까지 받게 하셨다”며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간증했다.
그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했다. 조실부모한 그는 열여덟 살에 고향 여수를 떠나 상경했다. 놀고먹다 보니 나쁜 친구와 어울렸고 폭력조직에 가입했다. 죄의 깊이가 날로 더해갔다. 서울 영등포 ‘백마파’ 두목이 됐다. 후배 100여명의 생활까지 책임졌다. 세력 다툼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다섯 번이나 수감생활을 반복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교도소에서 예배를 드리다 예수님을 처음 알게 됐다. 어둠의 길에서 벗어나려 밤마다 몸부림쳤다. 출소 후 전남 순천 목장개발원 현장에서 나무 베는 일을 감독하면서 한 목회자의 인도를 받아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기 시작했다.
닭똥 같은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비둘기 같은 평화가 영혼을 감쌌다. 난생처음 누리는 안식이었다. 이후 그는 인생관이 완전히 변했다. 자신의 안위보다 주님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총회신학원 부설 여수 성경신학교에서 3년간 성경을 공부했다.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고 서울 홍은동 개혁신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칼빈대 신학생 이순주(58) 사모와 1987년 결혼한 뒤 2년간 경기도 안양에서 목회를 하고 1990년 7월 이 마을에 왔다. 월항교회가 후임 목회자가 없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농어촌 목회를 자원한 것이다.
“지난날의 잘못이 너무 크기에 조금이나마 뉘우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목회자들이 외면하는 도서 벽지를 택했고 외딴 섬 월항교회로 부임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목회자로 사용해 주신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당시에는 개도로 오려면 여수 뭍에서 두 시간가량 배로 이동해야 했다. 개도 선착장에 내려서도 한 시간을 걸어야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 살배기 딸은 김 목사가, 두 살인 아들은 이 사모가 안고 걸었다. 교회에 도착해 보니 예배당 벽돌 사이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비가 오면 빗물이 새는 예배당, 고개를 들고는 들어갈 수 없는 오두막 사택이 전부였다. 이런 환경에서 노인과 여성 성도 9명이 첫 예배를 드렸다. 김 목사는 이날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그동안 살아온 힘들었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함께해 온 박선자(65) 권사는 “목사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회개와 구원을 강조하셨다”며 “그래서 그런지 목사님 말씀에는 힘이 있고 성도는 물론 마을사람들에게도 본이 되신다”고 말했다.
어느덧 이곳에서 김 목사 부부는 26년의 세월을 보내며 목회를 해 왔다.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바닷가가 보이는 언덕에 작지만 아름다운 예배당과 식당을 신축했고 방 3개가 딸린 아담한 사택도 지었다.
김 목사 부부는 이 마을 26가구의 복음화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김 목사는 마을주민의 집에 전기나 수도 등이 고장 나면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간다. 사망한 주민과 유가족들을 위해 장례예배를 드리는 것도 김 목사 부부의 사역 중 하나다.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자살을 하려던 청년을 구해 목회자로 만든 일도 있었다.
김 목사는 평소 성도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다. 세상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배신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함께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월항교회의 올해 목표는 ‘내 집을 채워라’(눅 14:23)이다. 가족 복음화와 월항마을 복음화, 무교회 섬 복음화가 구체적인 실천 사항이다.
김 목사는 “부족한 종”이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이 없었다면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걸어오는 격려의 전화나 성도들이 감사하다며 놓고 간 쌀과 음식 등 작은 정성도 소중한 힘이자 큰 격려가 된다고 했다.
김 목사는 교회 사역이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고된 사역이지만 앞으로 농어촌 목회를 돕는 손길이 많이 늘어나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교회 앞날에 청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느 농어촌교회처럼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노인이어서 이분들이 숨을 거두면 농어촌 마을은 무인촌이 되고 교회는 자연스레 문을 닫아야 한다.
김 목사 부부에게는 작지만 큰 소망이 있다. 아프고 병든 마을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교회 겸 요양원인 ‘소망의 집’을 건립하는 것이다.
김 목사는 “힘들지만 하나님께 의지하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며 “마을주민을 섬기고 말씀으로 치유 받는 참된 교회로 거듭나고 싶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이름도 빛도 없는 농어촌교회 목회에 많은 기도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개도(여수)=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추수감사절] 여수 개도 월항교회 “바다, 땅에서 풍요를 주셨네”… 섬 교회의 풍요로운 감사주일
입력 2015-11-13 19:27 수정 2015-11-13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