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는 사람 없을 때 나의 모습’. 미국 윌로우 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는 자신의 저서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에서 인격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심리학자들이 얘기하듯 인간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존재다. 사회적 신분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에 맞춰서 표정을 짓고 행동한다. 진짜 자신의 모습은 아무도 자신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드러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신 영화 ‘마션’은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지구과학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귀환을 다룬 영화다. 형식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한 사람을 고향으로 데려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는 휴먼 스토리를 담았다. 그러나 4년 후에나 오게 될 구조대를 기다리며 생존해야 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는 절대 고독 속에 드러나는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소명을 받기 전 모세가 경험했던 광야 생활에 대한 은유와도 같은 것이다. 영화 속 화성의 황폐한 이미지는 모세가 떠돌아다녔을 광야를 연상시킨다. 와트니는 매일 우주선 밖으로 나가 지평선을 바라본다. 모든 인간과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살았던 모세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특히 최고의 지성과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하며 화성까지 날아온 와트니가 모래 폭풍의 위력으로 졸지에 우주 고아 신세가 되어버린 것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겸손을 가르쳐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세도 한 때는 바로의 궁전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분이었지만 광야로 도망친 이후에는 양치기로서 40년을 살았다. 그때 고독과 더불어 겸손함을 배우지 않았을까.
과학주의를 신봉하는 현대인에게 ‘마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과학이 만들어낸 인간 승리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막으로 갔던 교부들(Desert Father)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인격의 덕목을 가르쳐주고 있다.
첫째,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다(딤후 1:7). 위험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와트니는 지구와 연락하기 위해 1997년 화성으로 발사된 우주탐사선 패스파인더(Pathfinder)호를 찾아 나선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할 뿐만 아니라 패스파인더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찾은들 지구와의 통신에 성공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야 말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갖춰야할 덕목이다.
둘째, 즐거움을 미루고 인내로 견디는 자기통제력이다(갈 5:23). 주인공은 구조대가 올 때 까지 살아남기 위해 식량을 쪼개서 날짜를 계산하며 아껴먹는다. 그의 생존법에는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살아가는 소비적이고 쾌락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셋째, 현상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볼 줄 아는 비전이다(마 19:26). 관객들은 와트니가 우주기지 안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장면을 보고 가장 즐거워한다. 동료들이 남기고 간 인분으로 비료를 만들고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물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불씨가 필요할 때 와트니는 우주기지 안에서 유일하게 불이 붙는 동료의 ‘나무십자가’를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당신은 현재의 제 상황을 이해해 주시는 거죠? 부탁해요!” 나무로부터 불을 볼 줄 알고 숨 쉬는 공기로부터 물을 생각하듯 우주의 고독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비전이다.
강진구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영화평론가)
[강진구의 영화산책] 고독의 시간에 빛나는 인격
입력 2015-11-13 18:35 수정 2015-11-13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