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 본 2041년… 로봇 세상] “투표권 달라”… 로봇의 반란

입력 2015-11-14 04:04

인구가 다시 늘기 시작한 건 '비비' 덕분이었다. 비비는 아이 돌봄 로봇이다. 자녀를 낳으면 국가가 1대씩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육아의 고통이니, 사교육 부담이니 하는 말은 옛말이 됐다. 비비는 아이들을 돌봐줄 뿐만 아니라 분유나 우유를 먹이고 같이 놀아주기도 한다. 동화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는 건 기본이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때에 맞게끔 공부도 시켜준다. 미적분이나 외국어 교육은 기본이다. 학교는 사회성을 키워주기 위한 '놀이'만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교육 능력이 뛰어난 로봇은 2041년 요즘 시대의 또 다른 '금수저'다.

수학 교사였던 아버지는 로봇 때문에 직업을 잃었지만 로봇 때밀이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로봇도 자기 때는 밀지 못하기에 정기적으로 로봇 목욕탕에 보내 묵은 때를 닦아줘야 한다. 그나마 이런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아이가 셋이라 정부가 특별한 혜택을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아이나 가족 없이 로봇 가족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주변에 많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할 생각조차 안 한다. 섹시봇(Sexy-bot)이 지천으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로봇 할인마트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도 섹시봇이다.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비싼 것은 정말 실제 연인보다 100배는 더 낫단다. 섹시봇은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고, 그 어떤 일이 생겨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늘 말이 곱고, 상냥하다. 결혼을 했다가 친정집에 두고 온 섹시봇을 못 잊어 집을 뛰쳐나오는 여성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아내 몰래 섹시봇과 이중생활을 하다가 들켜 망신을 당하는 고위 공직자들도 적지 않다. 섹시봇을 배우자 삼아 살면서 아프리카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섹시봇을 법적 배우자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이 받아들여진 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문제는 한 사람이 여러 대의 섹시봇을 거느려 섹시봇끼리 ‘질투’로 충돌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 할머니도 벌써 3대나 갖고 있는 케어봇(Care-bot)은 인류에게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케어봇은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봐주고, 건강 체크를 해주며, 온라인으로 처방받은 약을 투약해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고도의 조절 능력이 필요한 주사 실력이 가장 뛰어난 케어봇 선발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케어봇은 또 말동무가 없는 노인들에게 친구가 돼 주고, 장보기부터 물건 나르기 등 각종 심부름도 척척 해낸다. 노인들 사이에선 ‘케어봇 한 대면 열 아들 안 부럽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덕분에 최근 10년 사이 의사와 간호사들 상당수가 실직했고, 노인 요양소 등도 대부분 망했다.

케어봇은 노인들에게도 반가운 존재지만 수십 년간 건강보험 재정 부족에 시달려온 정부의 짐도 확 덜어줬다. 이는 세대 간 갈등, 부모 봉양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도 없어지게 해줬다. 케어봇은 정부 재정이 좋아지면서 아직은 젊은 나이인 100세 이상 장년층부터 무료로 제공된다.

평균수명이 180세 전후로 확 늘어나다 보니 증손은 물론이고 고손(高孫), 즉 현손(玄孫)에 이어 심지어 내손(來孫)을 보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해 212살 나이로 숨진 러시아 노인의 경우 곤손(昆孫)을 봤다는 얘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2040년 말에 나온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장차 잉손(仍孫)이나 운손(雲孫)을 볼 날도 멀지 않았다고 한다.

수명이 늘어난 건 의료기술의 발전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노동을 덜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적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식당에서 아프리카 난민을 1주일에 15시간을 초과해 일하도록 강요한 업주가 구속되기도 했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을 시키다니 비인간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산업계 전반에 확산된 로봇 근로자 때문에 사람들의 일자리가 이미 절반 정도 사라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노동시간을 여러 사람이 나누지 않고 한 사람한테만 몰아서 시키는 초과근무는 대표적인 사회악인 것이다. 정부도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국민들에게 장시간 일을 하지 말고 제발 좀 놀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정부는 사람들이 많이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스포츠로 ‘로봇 격투기’를 최근 도입하기도 했다.

로봇 때문에 없어진 직업도 많지만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졌다. 로봇을 어떤 분야에 활용할지를 연구하는 고급 엔지니어 자리가 많이 생겨났다.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로봇 조작 요령을 가르쳐주는 강사도 많다. 개인들에게 적합한 로봇을 골라주는 로봇구매상담사도 뜨고 있는 직업이다. 로봇으로 공연을 펼치는 로봇쇼 연출가와 로봇 연예인들을 관리하는 로봇매니저도 각광받고 있다.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들이 자주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거나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어 이들 로봇을 위한 로봇닥터와 로봇산책 도우미도 주목받고 있는 직업 분야다.

물론 로봇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첨단 기기들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일전에 로봇 러다이트(Luddite·기계파괴)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서는 수천 명이 로봇 없는 마을인 ‘노봇(No-Bot)’을 형성해 살아가기도 한다. 노봇 일대는 태어나 로봇 없는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 학생들과 과거에 살던 모습이 그리운 노년층에게 인기가 높은 관광지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곳을 ‘노봇 민속촌’으로도 부른다. 아이들은 노봇이 사람들이 로봇 강아지나 로봇 고양이 대신 아직도 진짜 강아지와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 걸 아주 신기해한다. 다만 이곳에는 어떤 로봇도 동반해선 안 되기에 소지품 검색이 매우 까다롭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사회는 로봇 없이 살 수 없게 됐다. 또 로봇이 야기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인간은 로봇을 앞으로도 더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보유한 로봇의 성능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이나 빈부 격차도 해소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과거 인류의 최저임금 개념처럼 일정 성능 이상의 ‘로봇 최저성능제’를 도입해 필수적인 기능을 갖춘 로봇을 각 개인에게 지급해주자고 요구하고 있다.

로봇의 성능이 이렇게 계속 좋아지는 추세라면 어쩌면 2100년쯤에는 주민등록등본에 로봇이 가족으로 등재될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일부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지자체에서는 로봇에 주민세를 매기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부화뇌동해 뛰어난 인공지능의 로봇은 주민세를 낼 테니 투표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니다, 이러다 2100년에는 로봇 대통령이 나오겠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