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클래식의 만남… 감동의 가을밤

입력 2015-11-12 21:22
경기도 화성 협성대 웨슬리홀 설봉채플에서 10일 열린 ‘신학과 문화의 수다-오선지 위의 신학2’ 프로그램 현장. 협성대 교수들이 바흐와 웨슬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협성대 제공

10일 오후 5시 경기도 화성 최루백로 협성대 웨슬리홀 설봉채플. 바이올린의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부드럽게 흐르기 시작했다. 이활 협성대 관현악과 교수가 연주하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었다.

이 교수의 연주와 함께 ‘신학과 문화의 수다(신문수)-오선지 위의 신학2’ 프로그램이 막을 올렸다. 이날 설봉채플은 학생 교직원 교수 등 120여명으로 가득 찼다.

연주가 끝난 뒤 협성대 양재훈 이찬석 이활 이지영 교수가 무대 위에 올랐다. 협성대 신대원 목회와예술센터가 마련한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협성대 교수들이 신학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며 음악 연주를 하는 자리였다.

주제는 ‘바슬리-바흐와 웨슬리의 만남’. 진행자들은 1시간30분 동안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1703∼1791)를 연결시켜 두 사람의 음악과 신학을 조명했다. 음대 교수들은 이야기 중간에 ‘관현악 모음곡 2번’ ‘클라비어 평균율 1번’ 등 바흐의 작품들을 여섯 차례 연주했다. 임수연 교수는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동시대를 살았던 바흐와 웨슬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비슷한 점이 많았다. 둘 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다. 바흐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자녀 20명 중 11명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하나님만 의지한 그는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주옥같은 1100여곡을 작곡했다.

웨슬리는 1735년 미국선교를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때부터 변화하기 시작한 그는 1738년 ‘올더스게이트 회심 체험’ 후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다. 이후 복음전도자로서 영국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신앙운동가가 된다.

양 교수는 “바흐의 삶을 보면 스스로 한계를 느끼던 시점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웨슬리 역시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철저히 깨달았다”며 “웨슬리는 최선을 다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찬석 교수는 “웨슬리는 매일 최선을 다해 구원을 이뤄가는 삶의 태도를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활 교수는 “웨슬리의 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흐의 음악”이라며 “바흐는 매주 새로운 노래를 작곡해 하나님께 바쳤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는 뜻인 ‘S.D.G(Soli Deo Gloria)’를 곡마다 붙였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음악과 신학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협성대 신대원생 송연정씨는 “바흐와 웨슬리가 만난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의 음악과 신학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곽일석(수원 원천교회) 목사는 “웨슬리의 신학과 바흐의 음악 세계를 연결하면서 통섭을 시도한 프로그램이 새로웠다”고 밝혔다.

협성대 신대원 목회와예술센터는 지난해부터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문화 언어를 통해 신학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지난해 가을 ‘신학과 문화의 수다(신문수)-오선지 위의 신학1’에선 신학자 칼 바르트와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함께 조명했다. 올해 서울 한마음교회 전농교회 상동교회 꿈이있는교회에서 주일예배를 ‘신문수-오선지 위의 신학’ 프로그램으로 인도했다.

지난 5월엔 ‘빛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외국과 한국의 교회 4곳을 살펴보며 건축과 신학을 논의했다. 최근 신학과 역사를 접목한 ‘올레 신문수’를 통해 인천의 역사가 서려 있는 지역을 탐방하기도 했다. 양 교수는 “인간의 근원과 존재 이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신학은 신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세상에서 신학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문화 등을 활용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