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해결사 슈미트

입력 2015-11-12 18:23

‘위대한 유럽인’ ‘독일 최고의 현자(賢者)’ ‘위기 시대의 총리’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제도’ ‘책임윤리를 실천한 정치인’…. 유럽 언론과 정치 지도자들이 지난 10일 작고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를 표현한 말들이다. 나치 시대에 장교로 참전했던 그는 영국군 포로가 돼 벨기에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나중에 “나치와 수용소 시절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에 민주주의자가 됐고, 동지애와 연대감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사회주의자가 됐다”고 회고한다.(넥스트 리더십-나라 경영의 영웅들, 김택환)

1974년 첫 총리 때 1차 오일쇼크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G6(76년 이후 캐나다 합류로 G7) 회의를 제안해 성사시켰으며, 유럽 국가들의 통화가치 균형을 유지하는 공동변동환율 시스템을 관철시켰다. G20과 단일통화 유로의 초석들이다. 독일 경제 민주화의 핵심인 ‘노사공동결정법’도 만들어냈다. 사회민주당의 중도좌파였지만 옛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SS20) 유럽 배치 위기가 닥쳤을 때 전후 처음으로 미·영 등 승전국들과 동등하게 테이블에 앉아 미국의 퍼싱·크루즈 미사일 배치를 결정했다. ‘재무장’을 반대한 진보 진영이 녹색당을 만드는 후폭풍도 겪었다.

동서독 관계에서의 결단은 빛난다. 동서독 화폐 1대 1 교환, 동독 정치범 석방을 위한 차관 제공, 동독에 대한 무이자 신용대출 허용, 동독 인프라 구축을 통한 교류 확대 등 굵직한 결정들을 했다. 전임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후임 헬무트 콜의 통독 완성의 중간 지점에서 슈미트의 결단이 없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게다. 증세와 복지 이견 때문에 82년 정치적 불신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은 가장 모범이 되는 인물(76%·2012)로, 현존 인물 중 가장 현명한 사람(1위·2002)으로 슈미트를 꼽았다. 그는 정파적 시각에 휘둘리지 않고 긴 안목에서 위기를 돌파한 진정한 해결사였다. 정치 지도자 최고의 덕목은 역시 책임성과 몰(沒)당파성이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