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후 이별한 연인 재회… 71년의 기다림 “날 알아보겠어요?”

입력 2015-11-12 20:00
노우드 토머스 할아버지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자택에서 인터넷 화상통화를 통해 호주에서 살고 있는 옛 애인 조이스 모리스 할머니를 71년 만에 만나고 있다. 버지니안파일럿

93세 노병은 71년 전 영국에서 헤어진 옛 애인의 사진을 아직도 갖고 있다. 19년 전 비행기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애인이 화상통화로 연결되기 직전 노병은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켰다. 헤어질 때 17살 앳된 아가씨가 이제는 88세가 돼 있었지만 노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토미?”

화면 속 할머니가 수줍게 말을 건넸다. 노병 노우드 토머스는 스카이프로 나타난 옛 애인이 자신의 애칭을 부르자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나를 알아보겠어요?”

늙은 애인은 시력을 거의 잃어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는 70년 넘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생생한 추억을 떠올리며 2시간이 넘도록 달달하게 이어졌다.

조이스 모리스는 토머스에게 “매일 아침 당신 사진을 보면서 ‘굿모닝’이라고 인사한다”고 말했다. 토머스는 “나도 그때마다 ‘굿모닝’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두 번째 화상통화부터는 아들들 도움 없이, 취재기자 배석 없이 자신들만의 시간과 대화로 채우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토머스는 1944년 영국 런던에 주둔하던 미 공군 101사단 소속 병사였다. 템스강에서 보트를 타다 눈이 마주친 소녀 조이스에게 반했다. 두 사람은 자주 만났고 소녀의 부모님도 찾아가 인사했다.

그러나 토머스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면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토머스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영국에 있는 조이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으로 건너와서 같이 살자고 청혼했다. 하지만 그녀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70년이 넘도록 서로의 안부를 알지 못했다.

토머스는 1996년 비행기(TWA) 추락 사고 사망자 명단에서 조이스와 같은 이름을 발견하고는 그녀가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 토머스와 헤어진 뒤 간호사가 돼 영국에서 호주로 이주한 조이스는 얼마 전 아들에게 토머스라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부탁했다. 아들은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 88세 생일을 맞아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한 토머스의 이야기를 다룬 신문기사와 군복무 시절 사진을 찾았다. 조이스는 그 사진을 아들에게서 넘겨받아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았다.

각각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헤어진 지 오래인 두 사람은 아들들의 도움으로 지난 6일(현지시간) 첫 화상통화를 나눴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 보도했다.

토머스는 전립선암을 앓고 있어 여행이 자유롭지 않지만 조이스가 사는 호주로 조만간 날아가기로 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