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명숙 <15·끝> “탈북형제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통일의 사도”

입력 2015-11-12 18:17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달 13일 여명학교를 방문해 탈북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뒤 조명숙 교감(오른쪽 두 번째)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나는 통일에 대해 공부하면서 독일 아데나워 재단의 소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독일 사람들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통일의 민낯을 발견했다.

“왜 한국 사람들은 독일 통일을 이야기할 때 모두 통일비용에 대해서만 묻는 거죠? 독일 통일은 철학적인 차원에서 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해결하고 자손들에게는 발전만 하면 되는 나라로 물려주려고 통일을 한 것입니다.”

“독일이 많은 통일비용을 들여 지금도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통일투자’입니다. 통일비용 운운하는 것은 엄살이에요. 지금 유럽에서 가장 건실한 재정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입니다. 한국 사람들도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해요.”

독일 사람들은 “동서독은 전쟁도 없었고 서독의 경제력으로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저력이 있었기에 갑자기 닥친 통일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며 “한국도 저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들은 “바로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답했다. 또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통일 이후 북한지역 재건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통일 준비에 드는 비용은 통일 후 그 몇 배에 달하는 경제적 효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통일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독일의 대통령과 총리는 모두 동독 출신이다. 지난달 13일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여명학교를 방문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학생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며 “통일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기에 대가를 지불하고 이룰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북한 형제들이 남한 사람에게서 듣고 싶어 하던 말이었다. 그는 “정말 잘 왔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통일이 희망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 한국의 지도자가 되십시오. 저도 여러분과 한반도 통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격려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목회자로서 동독의 평화 시위를 주도했던 가우크 대통령은 통일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며 탈북 형제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통일의 사도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나는 통일을 하면 큰일 난다고 말했던 크리스천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통일을 하면 남북한이 모두 혼란을 겪고 특히 남한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며 통일이 마치 무거운 십자가인 것처럼 말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도, 철학도, 부모세대로서의 책임감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듯 북한 사람들에게도 아버지이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부모가 가장 바라는 것이다.

때때로 통일은 우리에게 십자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면 십자가로 보이는 고난을 자발적으로 짊어지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웃으시며 십자가의 위치를 내게서 당신에게로 바꿔놓으셨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번도 십자가를 지고 간 적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짊어진 십자가를 타고 간 적이 많다. 통일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최근 입국한 탈북 청소년들을 보면 북한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체제에 의존하던 사람들이 스스로 먹고살면서 자의식이 싹트고, 식량난 때문에 국경을 넘었던 사람들이 북한 정권의 이야기를 다 믿지 않게 되었으며, 다양한 경로로 유입되는 남한 매체들이 북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더욱 속도가 붙고 있으며 북한 정권의 강력한 제재는 오히려 그들의 저항력을 키울지도 모른다.

반면 남한의 젊은이들에겐 통일에 대한 열망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힘들게 해서라도 통일을 희망으로 만들어가시는 것 같다. 취업문이 막히고 미래도 불투명한 젊은 세대들이 통일로 인해 활기를 찾고 남북한을 함께 회복시키는 ‘치유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